[고려증권 부도배경]『올것이 왔다』눈앞에 닥친 금융大亂

  • 입력 1997년 12월 6일 08시 22분


금융시장에 마침내 금융기관 부도라는 커다란 구멍이 나고 말았다. 자금난을 겪던 고려증권이 5일 금융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부도를 내고 종합금융회사들이 무더기로 부도위기에 몰려 있다. 금융대란 조짐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고려증권의 부도는 통제가 불가능할 만큼 일파만파의 충격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재정경제원 관계자는 이날 고려증권에 영업정지 명령을 내리면서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으로 봐야한다』며 『증권사가 더 부실화하더라도 정부가 직접 나서서 도와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에 따라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예금인출 사태가 더욱 폭넓게 번지고 금융기관간 자금지원 중단사태도 확산될 조짐이다. 금융공황의 징조는 재경원이 2일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밀려 9개 종금사에 대해 아무런 사전 대책도 없이 업무정지 명령을 내리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은행―종금사―기업으로 이어지는 자금 흐름은 최근 수개월간 비정상적이었다. 은행들은 정부의 「강압」에 못이겨 마지 못해 자금난을 겪고 있는 종금사들에 돈을 빌려줬지만 자금흐름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마침내 9개 종금사의 영업정지로 은행들이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게 되자 은행권은 나머지 종금사에 대한 자금지원을 전면 중단했다. 은행과 우량 종금사들은 4일 오전까지도 8개 종금사와 고려증권에 대한 자금지원을 거부했다. 사실상 이때부터 금융기관의 부도사태가 예견된 것이다. 정부가 외국환 평형기금을 통해 6천억원의 원화 자금을 하루동안 지원하고 은행들이 나머지를 도와주기로 하는 선에서 일단 부도위기는 넘겼지만 땜질식 처방에 불과했다. 결국 고려증권과 8개 종금사는 4일에도 만기가 돌아온 1조8천억원을 결제하지 못했다. 은행들이 3일 막지 못한 자금에 대해 이틀짜리 만기로 빌려줬는데도 상환불능 자금이 하루만에 2천억원이나 늘어난 것. 부실 종금사들이 못막은 자금은 그동안 매일 늘어나면서 은행들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고 말았다. 은행도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대출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지원을 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시중은행에 말로만 협조를 외쳐온 재경원도 뾰족한 대책이 없다며 강건너 불구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금융대란이 뻔히 예견되는 현실에서도 금융기관간 협조는 이뤄지지 않고 정부도 뚜렷한 정책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무정부 상태」가 지속돼온 것이다. 이같은 정책부재와 금융기관 부도위기로 자금시장에서 콜거래는 거의 중단되다시피 하고 금리는 폭등하는 등 금융시스템 전체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금융기관들이 부도나 부도위기가 이어질 경우 금리폭등은 물론 또다시 예금인출 사태가 빚어져 우량 금융기관까지 집단 부실화할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증권의 부도는 금융기관 전체에 대한 고객들의 불신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고객들의 예탁금 인출사태가 벌어지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증권사들은 물론 상대적으로 우량한 증권사들도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지적. 증권사 수입의 60∼70%가 위탁매매 수수료, 즉 고객들의 주문을 받아 주식매매를 대행해주고 받는 수수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증권 관계자들은 『수십년간 한 번도 망한 적이 없는 증권회사의 부도가 현실로 닥쳐온 마당에 금융기관들의 공조체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공멸(共滅)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경준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