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기업인]대기업 王회장들 다시 뛴다

  • 입력 1997년 9월 1일 08시 10분


경영권을 후계자에게 넘긴 뒤 막후로 물러앉은 왕회장들이 최근들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경기불황으로 기아 진로 대농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면서 어떤 재벌도 현재의 위기국면에서 무사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한데 따른 것. 한마디로 말해 위기돌파의 경험이 많은 왕회장들이 현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셈이다. 「왕회장 중의 왕회장」인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기아사태와 한보철강 인수문제 등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로(高爐)형 제철사업 진출을 위해 한보철강 인수를 검토했던 현대가 최근 인수를 백지화한 것은 정명예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으로부터 기아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전력(戰力)을 집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그 배경. 정명예회장은 기아사태 직후 측근들에게 『한보같은 부실기업을 인수했다가는 우리까지 망친다』며 인수작업을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 정명예회장의 동생인 정인영(鄭仁永)한라그룹 명예회장과 정세영(鄭世永)현대자동차 명예회장은 그룹의 주요 사안만 챙기는 형과는 달리 예전 못지않게 경영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한라그룹 정명예회장은 미국 포드사와 부품공장 합작 설립을 성사시키는 등 해외시장을 누비고 있다. 올들어 지난달말 현재 정명예회장은 해외출장 1백일을 기록해 지칠줄 모르는 기력을 과시했다. 올 연말까지 작년 기록인 해외출장 2백26일을 깰 전망. 현대자동차 정명예회장은 기아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대의 기아 방어작전이 대부분 정명예회장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올들어 금융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해온 박성용(朴晟容)금호그룹 명예회장은 결재권을 직접 행사하지는 않지만 매일 출근, 그룹 대소사를 챙기는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미원그룹 임대홍(林大洪)창업회장은 지난 8일 단행된 그룹회장 교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창욱(林昌郁)명예회장이 경영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자 차남인 임성욱(林盛郁)그룹부회장을 차기 후계자로 육성키 위해 회장을 전격 교체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 즉 임부회장이 경험을 쌓는 동안 과도적으로 전문경영자인 고두모(高斗模)회장 체제를 출범시켰다는 것. 쌍용그룹 김석원(金錫元)고문은 정치권 입문후 그룹 업무에 거의 관여하지 않고 있지만 쌍용자동차 업무만은 챙기고 있다. 쌍용자동차가 올들어 어려운 지경에 처한데 따라 김고문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구자경(具滋暻)LG그룹 명예회장과 이동찬(李東燦)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박용곤(朴容昆)두산그룹 명예회장 등은 일선 은퇴후 그룹 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아 대조적이다. 구명예회장은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이틀정도 여의도 본관으로 출근, LG복지재단 업무를 챙길 뿐 나머지 시간은 꽃가꾸기나 퇴임 임원과의 골프회동 등에 할애하고 있다. 〈이희성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