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톰슨」백지화 배경]佛 여론 밀려 비합리적 결정

  • 입력 1996년 12월 13일 19시 37분


「톰슨멀티미디어(TMM)사태」가 한국과 프랑스간에 중요한 외교현안이 되고 있다. 사태의 본질은 프랑스 정부가 국내여론에 밀려 국제 경제질서와 원칙을 무시하고 당초 TMM 인수업체로 선정했던 한국기업(대우그룹)을 차별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특히 지난 두 달 동안 프랑스 언론들이 대우그룹에 가한 「언어 폭력」은 그대로 한국의 국가이미지 실추로 연결됐다. 프랑스 언론들 대부분은 「대우의 기술수준은 TMM과 비교할 때 형편없이 낮다」고 보도했다. 또 한국은 싸구려 상품, 낮은 기술, 부도덕한 나라, 졸부의 나라로 치부하기도 했다. 우방국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비난한 것이다. 이는 한국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대우그룹과 제휴한 프랑스 라가르데르 그룹 회장이 「인종차별」이라고 비난했을 정도다. 프랑스정부는 12일 사태의 원인이었던 톰슨그룹을 방위산업부문의 톰슨 CSF와 가전부문의 TMM으로 나누어 내년부터 별도로 민영화하겠다고 밝혀 2개월여간 들끓었던 국내여론을 잠재우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대우의 TMM 인수계획은 완전히 원점으로 돌아갔다. TMM을 톰슨그룹으로부터 분리하는데만 최소한 6개월 이상이 필요한데다 이후 민영화절차가 1년 가까이 소요돼 실제 민영화는 오는 98년에야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대우가 프랑스 정부에 제출한 인수조건은 현재의 경영상태를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현재 이 문제와 관련, 프랑스 정부와 대화채널을 열어놓고 있는 프랑스주재 한국대사관의 李時榮(이시영)대사는 『이미 인수업체로 발표까지 됐었고 인수조건이 모두 드러난 대우에 다른 기업과 똑같은 조건으로 다시 인수경쟁을 벌이라는 의미라면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 문제와 관련, 미국과 영국의 언론들은 연일 프랑스 정부의 「비합리적 결정」을 비판했다. 세계화를 새시대의 이념으로 주창하는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특정국가 기업을 배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같은 국제적 신뢰도 추락과 외국 투자자들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을 예상하면서도 프랑스 정부가 대우그룹에 TMM을 인수시키겠다는 당초 발표를 뒤집은 것은 한마디로 「국민정서」 때문이었다. 프랑스 국내적으로는 그들이 추구하는 국가의 모습과 「세계화」와 「경쟁력」이라는 시대조류가 맞부딪치면서 나타난 고민이 이번 톰슨사태 안에 담겨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고민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가해진 한국에 대한 매도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한국이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 때문에 톰슨사태는 경제적 차원을 넘어서 전반적인 한―프랑스 관계 및 한국국민의 대(對)프랑스 시각을 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파리〓金尙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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