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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그늘 짙어진다-中]『재고정리엔 체면도 없다』

입력 1996-10-31 20:22업데이트 2009-09-2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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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承虎기자」 현대자동차는 지난달 28일부터 31일까지 아반떼 쏘나타Ⅲ 마르샤 등 3개 차종에 대해 12개월 무이자 할부판매를 실시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할부판매는 하지 말자」는 자동차업체간의 신사협정을 깬 것이다. 정상적인 할부금리가 연12∼14%임을 감안하면 중형차의 경우 무이자 할부판매로 대당 1백만원가량 손해를 본다. 업계의 선두주자인 현대가 출혈을 감수해가며 체면까지 내팽개친 채 약속을 깬 것은 바로 재고때문. 현대의 누적재고는 31일 현재 4만대를 넘어섰다. 다른 업체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대우와 기아는 할부판매조건을 어떻게 하면 좀더 유리하게 할까 한참 고심중이다. 지금까지 현대의 쏘나타Ⅲ는 3,4개월씩 기다려야 살 수 있었다. 할인판매제도는 아예 없었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무슨 차종이든 신청만 하면 즉시 인도된다. 현대가 지난달부터 「한마음 가족판매」란 캠페인을 펼치며 임직원에게 판매할당량을 내려보낸 것도 4년여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현대자동차는 이달중순엔 창사이래 처음으로 관리직 2백50명을 일선 영업소로 내려보냈다. 전형적인 불황기의 배치전환이다. 우려와는 달리 신청자가 쇄도해 영업적격자 선정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불황이 깊어지고 판매부진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나타난 새로운 양상들이다. 세계최고의 반도체 단일공장인 삼성전자 기흥공장주변에는 크고 작은 음식점이 1백여곳이 넘는다. 갈비집만도 10여곳 된다. 이들 음식점들은 이미 지난 4월경부터 손님이 격감, 파리를 날리고 있다. 경기도 이천의 현대전자 이천공장도 마찬가지다. 공장주변에서 불야성을 이루던 식당 당구장 카페 노래방 등은 작년보다 수입이 30%이상 줄었다고 울상이다. 한국의 조선업체들은 일본보다 10%가량 싼 가격에 배를 짓는다. 그러나 올 상반기엔 일본이 엔저를 무기로 우리와 같은 가격, 또는 우리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면서 수주시장에서 압도적 우위에 섰다. 경쟁력을 상실한 한국의 1∼9월중 수주량은 일본의 40%에 불과했다. 그나마 한국은 가동률을 유지하기 위한 출혈수주가 많았다. 동국제강과 한보철강은 올여름 3∼5일간 아예 공장문을 걸어잠그는 「집중휴가제」를 실시했다. 예년에 없던 일로 재고정리를 위한 고육책이었다. 한보철강 金奉圭이사는 『철강경기 부진은 자동차 조선 강관 컨테이너 등 수요업체들의 경기가 좋지 않아 일어나는 「덩달아 불황」의 성격』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자 당장 타격을 입는 것이 리스업계의 약정이다. 9월말현재 국내 리스업계의 총집행실적은 10조2천억원으로 작년동기보다 3.2% 줄었다. 리스계약실적은12조9천억원으로 작년보다무려23%감소했다. 결국 제조업이 불황에 빠지면 소득이 줄고 투자가 감퇴하면서 경제 전반이 활력을 잃는 「불황의 악순환」이 본격화하고 있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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