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 유쾌하고도 진지하게…‘연결’ 이야기하는 강익중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1월 14일 14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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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직전의 하늘은 연한 청록색이다.”

강익중 작가(62)의 시 ‘내가 아는 것’의 첫 문장이다. 그는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달이 뜬다’ 전시장 벽에 손수 이 시를 새겼다. 말 그대로 작가가 아는 것들을 나열한 시다. 뜬금없는 구절은 이렇게 이어진다.

“만두 속의 부추와 돼지고기 비율은 2대 1이다”라든지 “밤하늘의 별들은 크리스마스 장식이 아니다”라든지. 싱거운 말 속에 불현듯 격언이 튀어나온다. “기회는 다시 온다”든지 “정말 필요한 것은 별로 없다” 따위의 말이다.

강익중, Do not frown just smile at the dazzling sun light, 2003-2022, 나무에 혼합재료, 68.6 x 68.6 cm, 갤러리현대 제공

12년 만에 열리는 강 작가의 국내 개인전은 유쾌함과 진지함의 향연이었다. 설치작 ‘내가 아는 것’ 연작(2003~2022)은 그의 삶의 지혜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색색의 알파벳, 한글, 달 항아리가 그려진 3인치 나무패널이 전시장 두 벽면을 꽉 채웠다. 가만 살펴보면 글자는 단어를 만들고 뜻을 이루는 문장이 된다. “너와 나는 다르지 않다. 우리가 모여 세계를 이룬다”는 작가의 핵심 주제 ‘연결’과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최근 그는 전시보다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주력하고 있었다. 개인전이 오랜만인 이유다. 기본 방향은 ‘내가 아는 것’ 작업에 전 세계 어린이들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2020년 23개국 어린이 1만2000명과 함께 서울 광화문 광장에 ‘광화문 아리랑’을 설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강 작가는 “‘당신, 무엇을 아느냐’고 물으면 어른보다 아이들이 더 잘 대답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며 많이 굴절된 것”이라고 했다.

강익중, 달이 뜬다, 2022, 린넨에 아크릴릭, 120 x 120 x 4 cm, 갤러리현대 제공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자연과 섭리에 대한 철학이 돋보인다. 전시장 1층에 놓인 신작 ‘달이 뜬다’ 연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지러지는 달과 달 무지개를 형상화한 회화다. 강 작가는 달 무지개를 본 순간을 회상하며 “달 무지개를 기록하고 싶어 잠깐 한눈판 사이 금세 사라졌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그냥 바라보고 느끼면 될 것을. 그걸 담으려고, 잡으려고 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런 그가 자처한 것은 ‘안테나’다. “지금 사는 세상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아래로는 땅을 보며 그 사이를 연결하는 안테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존재와의 연결을 추구하는 그의 예술관은 32점의 신작 드로잉 ‘달이 뜬다’에서도 드러난다. 종이에 먹과 오일 스틱으로 산과 달, 사람, 동물 등 인간과 자연 등을 아이의 그림처럼 표현한 작품이다. 단순한 가운데 특이점은 여백에 있다. 강 작가는 “화면의 여백과 획의 비율을 6대4로 채우는 동양화의 기본 법칙을 따랐다”고 말했다.

강익중, 달이 뜬다, 2022, 종이에 먹, 오일스틱, 76 x 57 cm, 갤러리현대 제공

그는 “인생도 여백을 6에 두고 살아야 한다. 그림에 너무 빠지지 말자, 4정도만 그리자”며 장난스레 웃다가도 “사람이 만들어낸 인연이 4라면 자연은 6이다. 헤어질 수도, 다시 만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이어져있다”며 현자 같은 말을 하곤 했다. 만물을 하나로 연결하고 응집하려는 예술가의 다음 꿈은 무엇일까. 그는 “임진강에 남북한 어린이들과 실향민의 그림을 모아 남과 북을 잇는 꿈의 다리를 만들고 싶다”며 오랜 소원을 밝혔다.

전시는 다음달 11일까지.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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