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설화 속 ‘해룡왕사’ 위치는 현재 포천 군부대 일대”

김상운 기자 입력 2021-01-21 03:00수정 2021-01-2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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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반출 ‘대동금석서’ 원본 전수조사
위치 적시된 ‘원오대사비 탁본’ 발견
서울대 연구팀, 처음으로 존재 확인
일본 덴리대에 소장된 대동금석서 원본(왼쪽 사진)과 여기 수록된 해룡왕사 원오대사비 탁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옛날 보요선사가 남월(南越)에서 대장경을 구해 돌아올 때 해풍이 갑자기 일어 작은 배가 물결 사이에서 출몰했다. 보요선사가 “신룡(神龍)이 대장경을 여기 머물게 하려는 것인가”라고 말하고 주문으로 축원해 용까지 함께 받들고 돌아왔다.’(삼국유사 제3권)

삼국유사에는 나말여초 혼란기 선승들이 중국 남부에서 구한 대장경을 들고 귀국한 이야기가 전한다. 신룡까지 설득해 고국에 돌아온 일행이 산 정상에서 상서로운 구름이 일어난 곳에 ‘해룡왕사(海龍王寺)’를 짓고 대장경을 이곳에 봉안했다는 것이다. 신화와 역사적 사실이 혼재된 이 이야기에서 해룡왕사의 실제 위치가 어디였는지가 학계의 오랜 미스터리였다.

의문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팀이 2016∼2017년 일본 덴리대에 소장된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 원본을 전수 조사한 뒤에야 풀렸다. 17세기 전반에 쓰인 대동금석서는 신라 황초령 진흥왕순수비(568년)부터 조선 청풍부원군 김우명신도비(1687년)까지 총 400여 건의 비석 탁본을 모은 책이다.

남동신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이끈 서울대 연구팀은 이 책에 수록된 ‘해룡왕사 원오대사비’ 탁본에서 붉은색 글씨로 쓰인 별도 기록을 발견했다. 그동안 국내에 알려진 건 흑백사진으로 찍은 이 책의 영인본이어서 붉은색 글씨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 기록에는 해룡왕사의 위치가 현 경기 포천시 성산 군부대 일대이며, 고려 성종 때 문인 김정언이 비문을 쓴 사실이 적시돼 있었다. 원오대사비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로 탁본도 대동금석서 수록본이 유일하다. 서울대 연구팀의 현장조사가 아니었다면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묻힐 뻔했던 셈이다. 한중연은 이 같은 연구 성과를 정리한 ‘대동금석서 연구’(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를 최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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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금석서는 일제강점기 이마니시 류 경성제대 교수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됐다. 1932년 경성제대가 책으로 만든 게 흑백 영인본이다. 경성제대 영인본은 원본에 실린 7첩 중 삼국시대∼고려시대만 다룬 1, 2첩만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남 교수는 2012년부터 5차례에 걸쳐 일본 현지조사를 벌인 끝에 책에 수록된 모든 탁본 내용을 조사했다. 대동금석서 전 7첩을 전수 조사한 건 한일 학계를 통틀어 서울대 연구팀이 처음이다.

남 교수는 “대동금석서는 17세기에 저술된 가장 오래된 탁본첩 중 하나로 사료가 부족한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역사를 보완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조선시대 탁본 역시 정치사 연구에 새로운 단초를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보요선사#삼국유사#해룡왕사#대동금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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