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다가 ‘훌쩍훌쩍’… ‘오지랖 할머니’를 다시 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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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영화 ‘아이 캔 스피크

할머니와 손자뻘인 배우 나문희(왼쪽)와 이제훈. 두 배우의 세대를 뛰어넘는 조화가 웃음을 자아낸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할머니와 손자뻘인 배우 나문희(왼쪽)와 이제훈. 두 배우의 세대를 뛰어넘는 조화가 웃음을 자아낸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꼬장꼬장한 나옥분 할머니(나문희)는 동네의 ‘블랙리스트 1호’다. 철거 위기에 놓인 재래시장에서 옷 수선을 하며 혼자 생계를 꾸리면서도 어찌나 오지랖이 넓은지 20년간 구청에 넣은 시시콜콜한 민원만 벌써 8000여 건이다. 21일 개봉하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이런 할머니가 ‘민원 하려면 서류부터 작성해 오라’는 ‘원칙주의자’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를 만나고, 그에게 영어를 배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사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대충 전개가 예측 가능하다. 상극인 두 사람이 처음에는 티격태격하다가 결국은 깊은 정을 나누는…. 하지만 영화는 두 사람의 우정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라는 아픈 역사를 마주하며 관객에게 다가선다. 영어 공부라는 언뜻 뜬금없어 보이는 소재가 두 사람 사이의 소통 매개이자, 극 전반의 코믹한 요소와 묵직한 메시지가 겉돌지 않게 돕는 좋은 장치가 돼 준다는 점도 눈에 띈다.

앞서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년) ‘쎄시봉’(2015년) 등을 통해 ‘따뜻한 유머’를 선보여 온 김현석 감독은 간담회에서 “위안부 이야기를 피해자들의 후일담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회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시각으로 담으려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2시간 동안 ‘강약 조절’이 제대로 된 점도 영화의 묘미다. 60년 넘게 과거를 숨겨온 할머니가 영어를 배우려는 진짜 이유가 드러나는 과정을 거쳐 그가 결국 용기 내 미 의회 청문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증언하는 막바지 장면에선 시사회장 곳곳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을 정도. 그러면서도 곳곳의 유머러스한 장면들이 지나치게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을 막는다.

무엇보다 영화가 단순 코미디를 넘어 ‘휴먼 코미디’가 된 데는 배우 나문희의 유쾌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연기 내공이 큰 몫을 했다. 그는 “대본을 읽다 보니 위안부 할머니들이 얼마나 지옥 같은 삶을 머리에 얹고 살았을까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배우로서, 영화로서 한몫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75 대의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선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다. 실제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고 김군자 할머니의 증언을 계기로 2007년 미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을 채택한 것이 모티브가 됐다. 자극적인 장면 하나 없이도 개인과 시대의 아픔을 온전히 전할 수 있다는 건, 요즘 극장가에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12세 이상. ★★★★☆(별 5개 만점)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영화 아이 캔 스피크#나문희#이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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