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전쟁터에 놀이터를 빼앗긴 아이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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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생긴 첫 폭탄 자국, 그것이 나중엔 아이들의 놀이터와 쓰레기 하치장으로 사용되었다. ―소망 없는 불행(페터 한트케·민음사·2002년)》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폭격으로 움푹 파인 땅에 고인 물에서 수영을 한다. 그 폭탄의 흔적이 얼마나 깊은지 거침없이 다이빙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시리아 내전 중 찍혔다는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비극 위에 만들어진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이어지고, 포탄이 비처럼 쏟아지는 곳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난다. 한 해에만 60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전쟁과 질병, 기아로 죽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소년병(少年兵)이라는 이름으로 총을 장난감처럼 손에 쥔다. 지난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보고서에 따르면 13개 나라에 30만 소년병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서 1만 명가량이 매년 죽어간다. 고막을 찢는 듯한 폭격 소리, 화염에 휩싸인 마을,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총을 든 친구들. 20년도 채 되지 않는 그들의 짧은 인생은 온통 이런 기억들로 채워져 있다.

담담하게 써내려가는 페터 한트케의 전쟁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지금도 전쟁터에서 고통 받는 수많은 아이들을 떠올렸다. 한트케가 말한 ‘소망 없는 불행’, 즉 무언가를 꿈꾸고 소망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것이 되어버리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아이들이 살고 있다. 이들을 힘의 논리 속에 끌어들인 어른들은 이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 자격조차 없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은 땅 위에 깊숙이 파인 전쟁의 상처를 자신들의 천진한 웃음으로 치유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들은 언제 폭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불행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의사, 법률가, 기술자가 되겠다고 꿈꾼다. 전쟁의 흔적 위에서도 새 희망은 자란다. 상처 위에 딱지가 앉아 더 단단해질 날을 기다린다. 비록 폭탄 놀이터 위에서일지라도 그들의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소망 없는 불행#페터 한트케#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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