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뻔한 코드’를 거부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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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편일률 설정 파괴 잇달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텀블러’에 ‘당신이 알아차릴 수 있는 한국 드라마의 클리셰’라는 게시글이 해외 한국 드라마 팬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은 적이 있다. 악역으로 나오는 과거 여자 친구, 주인공의 사랑을 반대하는 재벌 집안 등 한국 드라마 특유의 설정 중 ‘매우 부유한 남자 주인공’이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설명은 이렇다. ‘재벌 출신의 남자 주인공은 성공한 의사, 사업가 등이다. 이들은 레스토랑 전체를 빌리거나, 가게의 물건을 모두 사는 데 거침이 없다.’

그러나 최근 드라마에서는 이 같은 천편일률적인 설정이 점차 파괴돼 새롭거나 비틀린 설정으로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 ‘사이다’ 여주인공의 등장

MBC ‘파수꾼’
MBC ‘파수꾼’
남자 주인공의 신분에 기대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신데렐라나 남자 주인공을 위기에 빠뜨리는 ‘민폐 여주(여자 주인공)’는 흔한 설정이었다. 하지만 요즘 방송되는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 캐릭터는 자립적, 현실적 모습으로 시청자들과 마주한다. 이들은 남자 주인공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고 운명을 개척해 ‘속이 시원하다’는 의미로 ‘사이다 여주’로 불린다.

SBS ‘수상한 파트너’의 변호사 은봉희(남지현)는 어린 시절 태권도 선수였지만 깡으로 사법연수원생이 되어 눈앞에 닥친 인생의 굴곡을 당차게 개척하는 캐릭터다. KBS2 ‘쌈, 마이웨이’는 최애라(김지원)를 통해 백화점 안내데스크 직원으로 일하면서도 아나운서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흙수저 청춘을 그렸다. MBC ‘파수꾼’의 주인공은 딸을 잃고 권력 뒤에 숨은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미혼모 형사 조수지(이시영)다.

○ 재벌 남친의 퇴장


SBS ‘피고인’
SBS ‘피고인’
한국 드라마의 전형적인 구성 요소였던 ‘재벌’ 소재도 최근 달라지고 있다. 아침드라마나 일부 주말드라마에는 여전히 남아 있긴 하지만 ‘질투의 화신’의 고정원(고경표), ‘쇼핑왕 루이’의 루이(서인국) 등 여자 주인공의 꿈을 이뤄주는 재벌 캐릭터 등장이 뜸해졌다.

오히려 최근 재벌은 구원자로서의 남자 친구 대신 ‘피고인’의 차민호(엄기준)나 ‘보이스’의 모태구(김재욱)처럼 감정 없이 악행을 일삼는 소시오패스거나 ‘김과장’의 박명석(동하)처럼 어딘가 모자란 구석이 있는 ‘허당’ 역할로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재벌과 관련한 부정적 이슈들이 잇달아 터지면서 재벌을 판타지로 접근하는 시각이 사라지고 있다”며 “초현실적 인물들이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완전히 현실적인 캐릭터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 신흥 악당 ‘검사장’의 급부상

SBS ‘수상한 파트너’
SBS ‘수상한 파트너’
드라마 속 악역은 ‘검사’, 특히 검사장이 ‘대세’다. 최근 등장하는 검사장 악당들의 캐릭터는 다양하지만 자신이나 주변의 악행을 숨기기 위해 지위와 권력을 이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파수꾼’의 검사장 윤승로(최무성)는 살인을 저지른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 ‘수상한 파트너’의 검사장 장무영(김홍파)은 권력을 이용해 무고한 사람을 협박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tvN ‘비밀의 숲’의 검사장 이창준(유재명)은 살해당한 건설업자 스폰서와의 관계가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도 주변인들의 이해관계를 언제든 이용할 준비가 돼 있는 인물이다.

TV 속 엘리트 검사장들은 범죄를 처단하기보다 사리사욕을 위해 거대 권력과 결탁하거나 자신의 허물을 가리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등 시청자들이 뉴스를 통해 보는 실제 세상과 닮아 있다. 드라마의 악역이 시청자들의 분노와 사회 부조리를 반영한다는 근거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드라마 파수꾼#재벌 남친#사이다 여주인공#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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