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실리콘밸리의 사막도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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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마지막 주 미국 네바다 주 블랙록 사막에 ‘블랙록시티’란 이름의 도시가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흔적 없이 사라진다. 올해는 28일부터 9월 5일까지 인구 7만 명의 임시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공동체의 주민이 되려면 참가비 400달러에, 물 식량 같은 생필품과 의식주를 자급자족해야 한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돈 대신 물물교환으로 해결해야 한다.

▷내 돈 내고 이런 불편함까지 감수하면서 사막도시에 모여드는 것은 버닝맨(burningman) 축제 때문이다. 누구나 내키는 대로 미술 음악 춤 등을 표현하거나 즐길 수 있고, 참가자들끼리 온갖 주제 아래 서로 배우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융·복합 이벤트다. 여기서 만들고 설치한 모든 것을 남김없이 부수고 해체하는 것이 특징. 마지막 날 사람 모양의 거대한 나무 조형물을 불태워서 ‘버닝맨’이라 불린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다. 초호화 캠프생활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이들은 개방 공유 협업 같은 버닝맨 정신을 실리콘밸리 문화에 접목하는 데 기여했다. 1998년 처음 참석한 두 창업자가 구글 로고에 버닝맨 이미지를 결합한 것이 특별한 기념일마다 등장하는 ‘구글 두들’의 출발점이다. 구글 최고경영자 에릭 슈밋도 버닝맨 마니아다. 2004년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업체인 ‘솔라시티’의 아이디어를 이곳에서 얻었다.

▷버닝맨은 1986년 래리 하비가 예술가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해변파티에서 목각 인형을 태운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자발적 자급적 자생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축제가 경찰과 마찰을 빚자 사막으로 갔다. 창립자 하비는 ‘최고 철학 담당’으로 예술주제를 정하는데 올해는 ‘다빈치의 작업실’. 척박한 사막의 한복판에서 가능성의 문화를 실험하고 꿈꾸는 사람들과 행동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꽃피우는 축제. 전국에 센터를 차려놓고 ‘창조경제’를 구태의연하게 육성하는 관료사회도 버닝맨의 창의적 발상을 눈여겨보면 어떨까.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사막도시#버닝맨#실리콘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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