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가왕 ‘캣츠걸’ 차지연이 초록 마녀 ‘엘파바’로 변신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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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8월 8일 1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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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클립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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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줘. 나 모든 걸 떨쳐내고 저 끝없는 세상을 본다고. 나는 꼭 돌아온다고. 이 오즈의 그 누구도, 어떤 마법사도 나를 끌어내릴 수는 없어, 이젠!”

초록색 얼굴을 한 차지연이 공중에서 빗자루를 한 손으로 들어올린 채 ‘중력을 벗어나(Defying Gravity)’를 마치는 순간,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공연장을 꽉 채운다. 이후 1막의 끝을 알리는 커튼이 내려가고 공연장에 불이 켜지면 “차지연, 진짜 잘한다”, “완전 소름 돋았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최근 MBC ‘일밤-복면가왕’에서 ‘캣츠걸’로 가왕의 자리에 올랐던 차지연은 뮤지컬 ‘위키드’에서 초록 마녀 ‘엘파바’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2003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스테디셀러’로 사랑 받고 있는 ‘위키드’는 국내에서도 대중성을 인정받은 인기 뮤지컬 중에 하나다. 올해 공연에는 초연 배우이자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서 ‘렛잇고(Let It Go)’를 한국어 버전으로 불러 알려진 박혜나, 정선아 그리고 차지연과 아이비가 새롭게 캐스팅 돼 7주간의 공연을 이끌고 있다.

○ ‘카리스마’ 차지연과 ‘귀요미’ 아이비 통통 튀는 캐릭터 연기

가창력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난 차지연은 ‘복면가왕’, KBS 2TV ‘불후의 명곡’ 등을 통해 대중에게 인정받은 바 있다. 특히 최근 ‘복면가왕’에서 5주 연속 ‘가왕’ 자리를 지키며 일약 스타로 떠오르기도 한 차지연은 그에 대한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금 무대에서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냈다.

차지연이 연기하는 엘파바는 피부색이 초록색이라 늘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고 아버지에게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여성. 그는 ‘오즈의 마법사’와 함께 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게 된 소녀의 모습부터 세상의 정의를 실현하고자 비뚤어진 세상과 맞서는 모습까지 연기와 넘버로 표현하며 한 여성의 성장기를 담아낸다.

또한 수준급의 실력을 요구하는 넘버 ‘중력을 넘어서’, ‘마법사와 나’ 등을 시원한 가창력으로 소화해 재차 놀라게 한다. 특히 임신 중임에도 무탈하게 연습과 공연을 소화하고 있는 차지연은 높은 공중에 올라가는 등 임신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은 열연을 펼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아이비의 변신 역시 놀라웠다. 그동안 ‘시카고’, ‘유린타운’ 등 원캐스팅을 소화해낸 저력이 ‘위키드’에서 다시금 발현됐다. 백치미를 갖고 있는 ‘글린다’ 역을 소화하는 아이비는 사랑스럽고 통통 튀는 매력을 선사한다. 룸메이트인 엘파바를 ‘인기녀’로 만들어주겠다며 부르는 ‘파퓰러(Popular)’는 관객석에서 ‘어우, 귀여워’라는 소리가 날 정도다.

또한 엘파바와 우정을 쌓으며 성숙해지는 글린다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차지연과 아이비가 마지막에 부르는 ‘널 만났기에’는 관객의 공감을 사는 데 성공했다.
사진제공=클립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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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 같은 이야기 속 세상을 향한 메시지

‘위키드’는 우리가 한 번쯤은 읽어봤을 ‘오즈의 마법사’의 ‘프리퀄(오리지널 버전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베스트셀러인 동명소설을 모티브로 한 작품인 ‘위키드’는 나쁜 마녀로 알고 있는 서쪽 마녀 ‘엘파바’가 사실 나쁜 마녀로 오해받고 있는 착한 마녀였다는 것과 착한 금발 마녀 글린다는 아름다운 외모로 인기를 독차지한 허영덩어리 소녀였다는 기발한 상상력을 펼치며 그 안에 메시지를 더했다.

화려한 조명과 의상 그리고 굉장한 넘버들은 무대를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같이 꾸며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인종차별, 소수자 차별, 기득권을 향한 소수자의 저항 등이 담겨 있다. 초록색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엘파바와 사람들과 동고동락했지만 말을 잃어가며 소수자로 전락해버리는 동물들이 그 예다. 극 중에서는 염소 교수 ‘딜라몬트’와 오즈의 마법사가 부리던 원숭이들이 대표적인 소수자로 표현된다. 이들은 현실 서구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 인종차별과 소수자 차별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오즈의 마법사가 “원더풀!(Wonderful)”을 외치며 “역사는 사실이 아닌 그 사실을 쓰는 사람의 관점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대사 역시 세상의 모든 역사가 올바르게 쓰인 것은 아니며 가끔은 기득권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남녀의 사랑, 아름다운 우정이 담긴 아름다운 이야기 안에 숨겨진 교훈을 찾고 생각해보는 것도 ‘위키드’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8월 2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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