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에 대한 암묵적 제약 비틀어 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아트 스페이스 풀 ‘퇴폐 미술展’

오용석 씨의 유채화 ‘흔들리는 or 흔들림’(2016년). “조형에 대한 순수한 탐닉을 악용해 변태적으로 몰아간다”는 나치스의 옛 텍스트와 함께 걸었다. 아트스페이스 풀 제공
오용석 씨의 유채화 ‘흔들리는 or 흔들림’(2016년). “조형에 대한 순수한 탐닉을 악용해 변태적으로 몰아간다”는 나치스의 옛 텍스트와 함께 걸었다. 아트스페이스 풀 제공
젊은 시절의 아돌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미대 입학시험에 거푸 낙방한 화가 지망생이었다. 시간이 흘러 48세의 총통 히틀러가 지배하던 1937년 독일 뮌헨. 나치스가 기획한 두 전시 ‘위대한 독일 미술전’과 ‘퇴폐 미술전’이 잇달아 열렸다.

‘위대한 독일 미술전’은 그리스 고전주의 기법을 모범 삼아 건장한 아리아인 남성과 온화한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한 조각상을 주로 선보였다. 반면 ‘퇴폐 미술전’은 나치즘의 가치에 어긋나는 것으로 낙인찍힌 작품을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모욕하듯 진열했다.

사회를 어지럽히는 타락을 추구한다고 나치스에 조롱받은 ‘퇴폐 미술’ 작가 112명 중에는 마르크 샤갈, 바실리 칸딘스키, 에드바르 뭉크, 파블로 피카소, 파울 클레, 케테 콜비츠 등 미술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작가가 다수 포함됐다. 나치스는 이 순회전을 통해 압수한 작품 1만7000여 점 가운데 4000여 점을 1939년 베를린에서 불태웠다.

8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 스페이스 풀에서 열리는 ‘퇴폐 미술전’은 나치스가 79년 전 내걸었던 ‘작품 비판 텍스트’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패러디 전시다. 도로보수 현장 등 일상적 도시 풍경의 조각을 사실적이지만 낯선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안경수 씨의 아크릴화 곁에 “아주 평범하고 익숙한 대상을 다루면서 천 위로 서서히 삐져 나오는 얼룩처럼 영혼을 병들게 한다”는 나치스의 글을 붙여 놓은 식이다. 기획을 맡은 안소현 큐레이터는 “형식적 파격을 시도한다는 식으로 나치스로부터 비난받은 작품이 지금 기준에는 다분히 ‘고전적’인 가치를 보여준다”며 “암묵적이고 다층적인 방식으로 강화돼 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의 양상을 짚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작품과 글을 어떻게 연결할지는 오롯이 보는 이의 자유다. 02-396-4805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아트 스페이스 풀#퇴폐 미술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