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정화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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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어머니는 이른 새벽에 정성스레 길어온 우물물 한 사발을 장독대 위에 올려놓고 두 손을 모은다. 드라마, 특히 사극에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장면이다. 지금도 입시철이면 치성을 드리는 어머니 모습에서 민간신앙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장면에서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정한수 떠 놓고….” 깨끗하고 차가운 물이어서 정한수(淨寒水)로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정한수는 우리 사전에 없다. ‘정안수’도 없다. 둘 다 뜻도 모른 채 입에 굳은 채로 쓰고 있는 것. 바른말은 ‘정화수(井華水)’다. 가족의 평안을 빌거나 약을 달일 때 쓰는, 부정 타지 않은 우물물을 뜻한다.

‘정화수’ 하면 떠오르는 ‘성황당(城隍堂)’은 ‘서낭당’으로 변해 ‘원말’로 남은 말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봄날은 간다)라는 노랫말과 정비석의 단편소설 ‘성황당’ 등에 남아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이 원말이 변한 말에 밀려 거의 쓰이지 않는 사례는 많다. 음달이 응달로, 화살통인 전통(箭筒)이 전동으로 바뀌면서 변한 말이 원말보다 언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서낭당에 모시는 신을 일컫는 ‘성황신’과 ‘서낭신’, 서낭당에서 지내는 제사를 일컫는 ‘성황제’와 ‘서낭제’도 똑같은 처지다.

서울 남산 꼭대기에 가면 국사당(國師堂) 터가 있다. 조선 태조 4년(1395년) 12월 조정은 남산 산신을 목멱대왕으로 봉작하고 제사를 지내 받들기로 했다. 국사당은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라는 뜻. 올 2월 종영한 ‘장사의 신-객주 2015’에서 극 중 매월(김민정)이 국사당 마마님이었다.

무당이 하는 굿의 하나인 ‘푸닥거리’란 낱말도 재미있다. 낱말대로라면 ‘푸닥+거리’ 구조여야 하는데, 우리말엔 ‘푸닥’이라는 명사가 없다. 그렇다면 어원이 불분명한 말은 소리 나는 대로 써야 하는 한글맞춤법에 따라 ‘푸다꺼리’로 써야 하는데 푸닥거리가 표준어다. ‘뒤치닥’이라는 명사가 없어 뒤치다꺼리를 표준어로 삼은 예와는 다르다.

‘비난수’는 무당이 귀신에게 비는 말이다. 죽은 이의 말을 무당이 대신 전달해 주는 것을 ‘손대잡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무당이 굿을 의뢰한 사람에게 꾸지람을 늘어놓는 걸 푸념이라고 한다. ‘내림대’는 굿을 하는 동안 무당이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붙잡고 있게 하는 대나무나 소나무 가지다. 미지의 세상을 향한 안테나라고나 할까.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정화수#성황당#장사의 신 객주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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