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건설로 바뀐 주민들의 삶과 식생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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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연구서 발간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 ‘첫마을’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세종특별자치시 한솔동 ‘첫마을’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비가 와서 탁 소리가 났는디 번개가 나무를 쎄린 거여. 아차 이제 끝났구나 싶었어. 그러더니 곧 행정복합도시로 변한 거여.”

옛 충남 연기군 남면 월산리 황골(현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세종리) 토박이인 임헌교 씨(78)는 2000년대 초반 마을에서 일종의 신목(神木)으로 신성시한 팽나무가 번개를 맞은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준 고목이 반으로 갈라지자 주민들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오래지 않아 황골이 행정중심복합도시에 편입된다는 발표가 뒤따랐다. 결국 이 마을의 집들은 모두 철거됐고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세종시를 둘러싼 주민 삶의 변화와 식생(植生)의 관계를 밝힌 연구서를 최근 발간했다. ‘세종시·식물·사람’이란 제목의 이 연구서는 박물관 학예연구사들이 지난해 2월부터 8개월간 실시한 현지조사를 토대로 작성됐다. 사람과 자연은 공생할 수밖에 없으며, 사회의 커다란 변화는 이 두 가지에 모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연구서에 따르면 2007년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공사가 본격화되면서 촌락마다 조성돼 있던 12개의 ‘마을 숲’ 가운데 3개만이 남았다. 원주민들에게 주로 ‘수살’이나 ‘숲거리’ 등으로 불린 마을 숲은 결혼식이나 마을잔치가 열리는 대표적인 공동체 공간이었다.

연구서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이전 이 지역 경제생활의 변화도 담고 있다. 예컨대 옛 연기군 전의면 일대에서는 서울 용산역에서 통근열차를 타고 온 서울 상인들에게 곡식, 나물을 파는 시장이 1990년대 초반까지 활발했다. 하지만 연기군행 기차의 운행횟수가 줄면서 시장 활동은 급격히 위축됐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세종시#국립민속박물관#세종시·식물·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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