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파괴된 일상… 인간은 어떻게 속물이 되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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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편혜영 지음/210쪽·1만3000원/문학과지성사

이 사람은 말을 할 수 없다. 교통사고가 난 뒤 눈을 깜박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구가 되면서다. 이야기는 주인공 오기가 사고 뒤 의식을 잃었다가 회복한 뒤부터 시작된다.

편혜영 씨는 일상에 내재한 공포를 포착해 묘사함으로써 그 일상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소설가다. 최근 몇 년 새 굵직한 문학상들을 잇달아 수상한 작가답게 그는 새 장편에서 단단한 서사와 팽팽한 긴장감을 정교하게 구현해 낸다.

이전과 달리 이야기는 일상이 달라진 상황에서 시작한다. 오기가 처한 것은 그 자체로 공포에 가깝다. 동승했던 아내가 죽은 뒤, 움직일 수 없는 그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은 장모뿐이다. 하나뿐인 딸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장모가 사위에게 어떤 감정을 가질지는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소설은 집 안에서 말 못하고 누워 있는 오기와 그를 향한 장모의 분주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장모는 집 안 물건을 훔친 간병인과 다툰 뒤 간병인을 쫓아내고, 목사를 불러와 함께 기도를 한다. 딸은 죽고 사위는 살아남은 데 대한 원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고 강해진다. 장모는 연못을 만든다면서 마당에 구멍을 파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안정적이었던 40대 대학교수 오기의 이면을 들춘다. 오기는 교수 임용 때 경쟁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 술수를 부렸고, 후배와 불륜을 저질렀다. 어떤 일이든 해보려고 하는 아내의 의지를 비웃고 꺾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싫어했지만 그 모습은 어느새 아버지와 닮아 있었다. 초반에 영화 ‘미저리’를 연상시켰던 소설은 한 인간이 손가락 하나 쓸 수 없이, 말 한마디 할 수 없이 누워 있기까지 얼마나 기만적인 삶을 살아 왔는지를 고발한다. 작가는 사고 직전 아내의 입을 통해 이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들려준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속물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홀#편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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