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왜곡… 정보의 프레임에 대한 경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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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미디어예술가 ‘율리어스 포프’전

실시간으로 연결된 인터넷 뉴스피드의 중요 키워드를 신호로 받아 떨어지는 물줄기처럼 형상화한 설치작품 ‘비트. 폴 펄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실시간으로 연결된 인터넷 뉴스피드의 중요 키워드를 신호로 받아 떨어지는 물줄기처럼 형상화한 설치작품 ‘비트. 폴 펄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쏴악, 후두둑….’

여름에 시작했다면 시원했겠다. 2016년 9월 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선보이는 ‘대한항공 박스 프로젝트: 율리어스 포프’전. 모서리의 프레임만 남긴 컨테이너 4개를 쌓아 10m 높이의 구조물을 만들었다. 그 꼭대기로부터 ‘물줄기 문자’가 층층마다 끝없이 쏟아져 내린다.

4개 층의 천장부마다 설치한 분출구에서 디지털 신호로 마름질한 물줄기가 떨어진다. 맨 위층부터 순차적으로 떨어지며 형성되는 물줄기 다발이 1초 남짓 공중에서 판독 가능한 문자를 이뤘다가 흩어진다. ‘FIRST’ ‘LOVE’ ‘MEN’ ‘PUZZLE’ ‘SOME’ ‘SYSTEM’…. 실을 물줄기로 대체한 방직기를 연상시킨다. 문득문득 나타났다 사라지는 단어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메시지를 엮으려 애쓰게 되지만, 의미 있는 어구나 문장을 이루는 행렬은 아니다. 잠시 부각되는 듯하다가 순식간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 현대사회 문자 정보의 생리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독일의 미디어아티스트 율리어스 포프(42)가 제작한 이 설치물의 제목은 ‘비트. 폴 펄스(bit. fall pulse)’다. 정보 조각(bit)이 떨어지는(fall) 빠른 주기(pulse)를 보여준다. 물줄기가 순간적으로 형성하는 단어는 인터넷 뉴스에서 노출되는 빈도에 따라 선택된다. 요즘 세상에서 한순간 중요하게 언급된 키워드는 잠시 후 전혀 다른 가치로 해석되거나 다른 정보로 대체되기 마련이다. 정보에 대한 짧은 ‘관심 주기’를 살펴 작품에 적용한 것이다.

10여 년간 이 작품 시리즈를 만들어온 작가는 “정보의 소비 수명과 모호함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구조적 요소로만 쓰던 컨테이너 프레임에도 의미를 담았다. 거대한 탑처럼 쌓은 프레임은 현대의 미디어 바벨탑을 은유한다. 프레임 안에서 정보는 조작되고 처음 나타날 때와 다른 의미로 소화된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세상이다.” 02-3701-9500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율리어스 포프#비트. 폴 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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