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향긋한 맥주, 유럽 대표 호가든 vs 아시아 대표 칭다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향’을 마시는 수입맥주들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맥주전문점 한국맥주거래소에서 직장인들이 퇴근 후 맥주를 마시고 있다. 이곳은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향 좋은 수입 맥주를 팔고 있어 여의도 근처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다. 한국맥주거래소 제공
17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맥주전문점 한국맥주거래소에서 직장인들이 퇴근 후 맥주를 마시고 있다. 이곳은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향 좋은 수입 맥주를 팔고 있어 여의도 근처에서 근무하는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다. 한국맥주거래소 제공
코끝으로 느끼는 맥주의 향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서 주인공 장 밥티스트 그루누이는 어떤 체취도 가지지 않은 채 태어난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루누이가 자신이 제조한 향수로 ‘향’을 갖게 되자 사람들은 점차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로 맥주의 향은 맥주 애호가들의 혼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요소 중 하나다. 최근에는 향을 강조한 맥주들이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벨기에의 호가든 맥주는 이국적인 느낌의 산뜻하면서도 은은한 오렌지 향이 가장 큰 특징이다. 호가든 향의 비밀은 지금으로부터 5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벨기에 호가든 지방의 수도사가 밀 맥주의 고유한 제조법을 발견한 것은 1445년. 당시 벨기에는 네덜란드가 거느리는 수많은 식민지의 일부로 네덜란드의 여행자들을 통해 이국적인 향신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수도사들은 오렌지 껍질과 식민지였던 퀴라소 지역에서 가져온 고수로 맥주에 향을 넣는 실험을 했다. 맥아 제조와 제분, 반죽, 여과 과정을 거쳐 분리된 맥아즙은 가마솥에서 103도로 가열되는데 호가든 향의 비결은 이 과정에 있다. 끓이는 단계에서 고수와 말린 오렌지 껍질을 넣는 것. 이후 재료를 넣은 후 씻고 식히고 발효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오렌지 시트러스 향을 가진 호가든이 완성되는 것이다. 홈플러스에 따르면 올 1∼5월 수입 맥주 매출을 분석한 결과 전통적으로 인기를 끌어온 라거 계열의 맥주를 제치고 향 좋은 호가든이 2위를 기록했다.

중국 칭다오 맥주는 재스민의 은은한 향이 특징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향 좋은 맥주 중 하나다. 칭다오 맥주 제공
중국 칭다오 맥주는 재스민의 은은한 향이 특징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향 좋은 맥주 중 하나다. 칭다오 맥주 제공
유럽 맥주를 대표하는 향긋한 맥주가 호가든이라면 아시아 맥주로는 중국의 칭다오가 특유의 재스민 향으로 맥주 애호가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1903년 중국 청도에 주둔한 독일군들이 본국의 맥주 맛을 잊지 못해 직접 양조장을 세우면서 탄생하게 된 칭다오 맥주는 중국을 대표하는 맥주답게 중국인의 차(茶)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국인에게 차는 물보다 더 친숙한 음료다. 그중에서도 중국 음식을 먹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차가 바로 ‘재스민차’. 재스민의 은은한 향은 다소 느끼할 수 있는 중식의 기름진 맛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 중국 음식과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칭다오 맥주의 재스민 향은 특별히 향을 첨가하기보다는 홉과 맥아의 적절한 조화와 발효를 통해 ‘재스민 차’의 산뜻한 향을 낸다는 것이 특징이다. 마치 위스키가 견과류나 과일, 꽃향기를 넣지 않아도 숙성과 블렌딩을 통해 다채로운 향을 가지고 있는 것과 유사한 원리다. 칭다오 맥주는 재스민 향을 타고 지난해 하반기 롯데마트 수입 맥주 매출에서 점유율 43.8%를 차지하며 수입 맥주 대표 브랜드인 미국의 ‘버드와이저’(28.6%)와 ‘밀러’(21.5%)를 따돌리고 1위에 올랐다. 전용헌 칭다오 맥주 브랜드 매니저는 “칭다오 맥주의 재스민 향은 음식 맛을 한층 담백하게 해 반주와 야식 문화가 발달한 국내 식문화와 잘 맞아떨어져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프랑스 맥주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국민맥주 크로넨버그1664도 독특한 향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특히 ‘크로넨버그1664 블랑’은 병을 딸 때 느껴지는 상쾌한 시트러스 향과 맥주를 넘길 때 입 안에 남는 진한 벌꿀의 달콤한 향이 조화를 이뤄 인기를 끌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산 맥주는 총 121만 달러(약 14억 원)가 수입됐다. 크로넨버그1664의 인기에 힘입어 프랑스 맥주 수입액은 전년과 비교해 824.8%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시내 맥줏집에서도 “향기 나는 맥주 주세요”

벨기에의 호가든 맥주(왼쪽)와 프랑스의 크로넨버그1664 블랑맥주. 향 좋은 유럽 맥주로 유명하다. 오비맥주·하이트진로 제공
벨기에의 호가든 맥주(왼쪽)와 프랑스의 크로넨버그1664 블랑맥주. 향 좋은 유럽 맥주로 유명하다. 오비맥주·하이트진로 제공
1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맥줏집 한국맥주거래소에서는 더운 여름날 밤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쌓인 피로를 풀려는 직장인들로 붐볐다. 이날 직장인들의 테이블 위에는 로스트코스트 탠저린 휘트(오렌지향, 미국), 에델바이스(플로럴향, 오스트리아), 린데만스 크릭(체리향, 벨기에), 로그 헤이즐넛 브라운 넥타(헤이즐넛향, 미국), 스톤 고투IPA(열대과일향, 미국) 등 특유의 향기로 유명한 맥주들이 많이 놓여 있었다. 직원들은 향기가 좋은 맥주를 찾는 손님들의 주문으로 분주했다. 이날 린데만스 크릭을 마시고 있던 직장인 김형만 씨(30)는 “이곳은 다른 맥줏집에 비해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든 향이 좋은 맥주가 많아 퇴근 후 자주 찾는다”며 “향 나는 맥주를 좋아하는 여의도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핫플레이스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맥주거래소 김웅석 매니저는 “젊은층들은 미각은 물론이고 후각까지 자극하는 향긋한 맥주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최근 우리 가게에서도 에델바이스, 탠저린 휘트, 헤이즐넛 브라운 넥타 등 기존 맥주와 다른 고유의 향을 가진 맥주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정영식 오비맥주 양조기술연구소장은 “향이 좋은 맥주는 술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 또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젊은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며 “맥주의 종류가 다양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향’은 ‘맛’과 함께 맥주의 특징을 살려주는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