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개발로 술렁이는 마을… 순정한 농부는 땅을 일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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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혜택/크누트 함순 지음·안미란 옮김/496쪽·1만5500원·문학동네

‘땅의 혜택’이 나온 때는 유럽 사회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물질적,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때였다. 묵묵히 땅을 경작하는 농부의 삶을 그린 이 소설에 대한 호응은 컸다. 노르웨이 작가 크누트 함순이 1920년 노벨 문학상을 받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00년 가까이 전에 나온 이 소설이 이제야 국내에 번역됐다. 명불허전이다. 기계문명에 대한 비판의식, 땅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굵은 필치로 그려졌다. ‘황야를 지나 숲으로 통하는 기나긴 길. 그 길을 낸 것은 누구였을까? 이곳에 처음으로 왔던 남자. 그 사람이었으리라.’ 이 소설은 이사크라는 사내가 걸어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책이라고는 읽지 않는 농부이지만 빛나는 하늘, 숲의 바람 소리, 쌓인 눈을 보면서 신뢰와 경건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씨를 뿌릴 때면 신을 벗고 맨발로 흙을 밟고 수확을 할 때는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가 경작하는 황무지를 찾아온 여성 잉에르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부부가 함께 농사를 짓는, 자연에 성실하게 복무하는 인생은 계속된다.

작가가 작품 내내 견지하는 메시지는 땅에 대한 믿음이다. 소설에서 아이를 죽이는 두 여성, 이사크의 두 아들의 삶이 선명하게 대비된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자연에 발 디디고 살아가는 데 비해 큰아들은 도회지에 늘 마음을 두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막 낳은 아이를 죽인 이사크의 아내 잉에르는 자신의 행위가 고통스럽다. 그는 아이가 자신 같은 언청이(구순구개열)가 될까 봐 영아 살해를 감행했다. 인근에 거주하는 여성 바르바로도 같은 죄를 저지르는데, 이는 아이에게 묶여 도시로 떠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다. 광산 개발로 산 아래 마을에 돈이 흘러들어오면서, 황무지에 살던 사람들 중 돈을 좇는 사람들은 떠나지만 자연의 생명력을 가까이 하려는 순정한 농부들은 땅에 뿌리를 내린다.

땅에 대한 인물들의 고집스러운 애착에서 작가의 굳은 주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땅의 혜택’을 비롯해 ‘세겔포스 마을’ 등 목가적인 작품에는 그가 미국에서 두 번에 걸쳐 체류했다가 현대 문명에 실망한 개인적 체험이 스며 있다. 함순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친독일적 발언을 한 것으로 인해 그의 문학 이력에 그늘이 드리워지기도 하는데, 이때의 경험에서 비롯된 반미 감정으로 인한 반발이라는 해석도 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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