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자궁 안에서 결정된다? 동성애, 성전환도 태아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일 16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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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뇌다
다크 스왑 지음·신순림 옮김
568쪽·2만5000원·열린책들

허무하다. 저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싫다고.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인간적인 생각이 든다. ‘우리는 우리 뇌다’는 뇌 과학 에세이다. 많은 다른 뇌 관련 책과 달리 이 책은 뇌의 일대기 중 생성기에 초점을 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신경생물학과 교수인 저자의 핵심 주장을 딱 한 줄로 표현하자면 ‘모든 것이 자궁 안에서 결정된다’는 것.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자가 섞여 태아가 생성된 후 자궁 안에서 뇌가 프로그래밍 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호르몬과 생화학 요인으로 개인의 성격, 재능, 한계 등 정체성이 모두 정해진다는 의미다.

나아가 지능 수준, 영성정도, 반사회적 경향성, 정신분열증, 자폐증, 우울증 같은 뇌 질환 가능성마저 대부분 이 시기에 결정된다. 저자는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실험결과를 소개한다. 제2차 대전 말기인 1944~45년 네덜란드는 기아가 심했고 당시 자궁 안에 있던 아기들은 불충분한 영양공급을 받아야 했다. 이들은 성인이 된 후 일반인보다 비만증에 잘 걸리는 경향을 보였다. 태아 때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다 보니 모든 칼로리를 저장하도록 뇌가 신체를 조절해 놓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 기능이 그대로 작동한 것이다.

사회적 논란이 되는 동성애, 성전환 등도 태아 때 결정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생식기 분화는 임신 첫 주, 뇌 속 성적 분화는 임신 후반기에 형성된다. 테스토스테론으로 인해 남자 혹은 여자라는 생각이 태아 뇌 안에 고착화되는데 이 과정에서 몸은 남성이지만 뇌에서는 자신을 여성이라고 인식하거나 혹은 반대의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동성애 성향은 질병이나 정신질환이 아니라 일정 비율로 태아에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범죄로 취급하는 ‘소아성애’라는 성적 취향마저 태아의 성호르몬과 출생 전 뇌의 발달, 유전적 성향으로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3세대에 걸쳐 소아성애증 남성을 낳은 집안을 예로 든다.

출생 후 사회적 환경과 교육이 훨씬 덜 중요하다면? 모든 것이 태아 때 결정된다면 교육이라는 인간의 숭고한 노력은 필요를 넘어 가치조차 없는 것 아닐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인간이 지닌 내적 한계와 차이를 자연의 순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무한 경쟁 속에서 모두를 밀어 넣는 사회와 성소수자를 지나치게 비하하고 손가락질 하는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뇌과학을 통해 사회문제에 시사점을 주려는 저자의 시도가 색다르게 다가온다.

김윤종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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