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왕은 배트맨과 동급… 비천상은 날개없는 천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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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붓다’ 책 통해 동양-불교 미학 쉽게 풀어 소개한 명법 스님

지난달 27일 서울 덕수궁에서 만난 명법 스님은 “불교 예술은 인간의 삶을 한 걸음 떨어져 관조하게 함으로써 생성되고 소멸되는 현상들을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해학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지난달 27일 서울 덕수궁에서 만난 명법 스님은 “불교 예술은 인간의 삶을 한 걸음 떨어져 관조하게 함으로써 생성되고 소멸되는 현상들을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해학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슈퍼히어로 배트맨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뭔지 아세요. 끝내주는 첨단 기기, 엄청난 무술? 아니에요. 두려움을 극복하고 박쥐란 이미지를 통해 적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거예요. 불교에도 이런 존재가 있답니다. 바로 사천왕(四天王)이에요.” 이게 뭔 소린가. 아무 사찰이나 찾아가도 만나는 사천왕이 배트맨과 동급이라고? 그걸 또 눈빛 맑은 비구니께서 조목조목 얘기하니 귀가 쫑긋해졌다. 지난달 27일 서울 덕수궁에서 만난 명법(明法) 스님은 서울대에서 미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따고 동국대 겸임교수로 있는 학자. 최근 ‘미술관에 간 붓다’(나무를심는사람들)란 책을 통해 서양과 다른 동양·불교 미학을 대중에게 소개하려 노력했다니 그 내용이 자못 궁금했다. 》

―미학이란 게 미(美), 예술에 대한 학문 아닌가요. 아름다움은 만국 공통 아닙니까.

“맞아요. 굳이 사천왕과 배트맨을 연결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아름다움에 차이가 없을진대 그간 미학은 서구 중심적이었습니다. 물론 근대적 개념이 거기서 출발한 탓이겠지만 예술은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잖아요. 사천왕도 따지면 배트맨보다 훨씬 연배가 위죠. 사천왕은 원래 사람을 잡아먹는 야차였답니다. 그런데 불법에 감화돼 불교의 호위무사가 된 거죠.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경지엔 오르지 못했으나 죄를 지은 이에겐 부처보다 무서운 존재고요. 배트맨이 딱 그렇잖아요? 고담시를 지키는 영웅이지만 번뇌에서 벗어나진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트맨에게서 사천왕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사천왕을 통해 배트맨을 해석하려는 시도로 봐주면 좋겠네요.”

―서양적 근대적 관점에서 보느라 우리 미학의 본질을 놓쳤다는 말로 들립니다.

“예를 하나 들까요. ‘동자승’ 하면 뭐가 떠오릅니까. 주로 순수하고 천진한 이미지죠. 하지만 그건 근대 이후 아동에 대한 인식이 만든 허구입니다. 한국 미술을 토속성과 소박함 위주로 해석하는 것과 같은 오류예요. 근대 이전 어린이는 미성숙했을지언정 성인과 같은 대접을 받았어요. 불교에서도 동자승은 역할이 분명한 독립적 주체예요. 명부전에서 동자는 염라대왕 아래서 진실을 기록하는 중요한 업무를 담당합니다. 조선 불화나 조각을 보면 동자는 절대 귀여운 미소를 띠지 않아요. 엄격한 표정으로 맡은 바에 충실하죠. 웃고 있는 동자는 요즘 사람들의 관점이 반영된 것입니다.”

서양의 천사와 달리 비천상(왼쪽 사진)의 선녀는 날개 없이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으로 형상화돼 있다. 또 고담시를 지키는 영웅이지만 늘 고민에 빠지는 배트맨처럼 사천왕은 부처의 나라를 지키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한 존재다. 동아일보DB
서양의 천사와 달리 비천상(왼쪽 사진)의 선녀는 날개 없이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으로 형상화돼 있다. 또 고담시를 지키는 영웅이지만 늘 고민에 빠지는 배트맨처럼 사천왕은 부처의 나라를 지키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한 존재다. 동아일보DB
―그럼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도 동양과 서양이 다를 수 있겠네요.

“본질은 같지만 표현이나 세계관은 차이가 납니다. 우리의 위대한 보물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보세요. 비슷한 자세지만 육체를 예술로 드러내는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생각하는 사람의 울퉁불퉁한 근육을 보세요. 서양인들은 인간의 몸을 대상화합니다. 육체도 소유의 개념으로 받아들여 감정과 정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여겼죠. 반면 반가사유상은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어요. 정신의 안식 아래 가장 이완되고 느슨한 상태의 곡선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육체에 뭔가를 담는 게 아니라 그걸 넘어서는 자유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았어요.”

―왠지 서구보다 동양과 불교 미학이 훨씬 수준 높아 보입니다.

“그렇게 차등을 두는 것도 서구적인 겁니다. 불교에서 예술이란 ‘천 개의 강에 비치는 달’이에요. 서양 학자라면 실재는 하늘에 떠 있고 강에 비친 건 허상이라 하겠죠. 동양사상에선 하늘에 뜬 것도, 나머지 천 개도 다 달입니다. 각자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녔고 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산수화에서 여백의 미란 단순히 비워놓은 게 아니라 담지 않음으로써 전체를 완성하는 거잖아요? 그 속에 담긴 정신, 본성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종교 화두 같기도 하고…알쏭달쏭합니다.

“사찰 범종에 자주 등장하는 ‘비천상(飛天像)’ 아시죠. 서양으로 치면 천사인데 뭐가 다를까요. 바로 날개가 없답니다. 서양에선 하늘을 나는 존재라면 날개가 있는 게 논리적이고 타당한 거죠. 우리는 하늘거리는 옷만 그려 넣어도 날고 있단 걸 감각적으로 알았어요. 상상력은 문명의 산물이자 문화의 근원입니다. ‘날개가 없어도 날 수 있다.’ 이걸 꼭 명심하세요. 예술은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합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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