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오페라의 주인공이 된 작곡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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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음악예술의 꽃인 오페라에는 종종 역사상의 실제인물이 실명으로 나옵니다. 그렇지만 유명 예술가, 특히 음악가가 오페라에 등장하는 경우는 보기 힘듭니다. ‘오페라 베토벤’ ‘오페라 모차르트’가 있다면 멋진 일이겠지만, 위대한 선배 음악가들의 음악을 직간접으로 인용해야 한다는 압박이 너무 커서인지 감히 시도해본 작곡가가 없습니다.

하나 예외를 들자면 독일 작곡가 한스 피츠너(1869∼1949)가 작곡한 오페라 ‘팔레스트리나’입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작곡가 조반니 피에를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1525∼1594)의 모습을 담은 3막짜리 오페라죠. 이 작품엔 교황이 교회 개혁을 위해 소집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라는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당시 여러 다양한 교회 개혁의 요구와 맞물려 ‘지나치게 복잡한’ 교회음악을 단순하고 간명한 음악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습니다. 그때 교황 비오 4세가 이 사안의 결정권을 가진 추기경들을 초청해 팔레스트리나의 ‘교황 마르첼로의 미사’를 들려주었습니다. 복잡한 다성(多聲) 음악과 개혁파들이 요구한 단순한 음악의 장점을 잘 혼합한 음악이었죠. 추기경들은 만족했고, 다성 음악은 그 뒤에도 계속 교회에서 연주될 수 있었습니다.

왜 피츠너는 이런 오페라를 썼을까요? 그가 활동했던 20세기 초반은 그때까지의 고전음악 전통이 권위적이고 형식적이라며 음악의 ‘문법’을 뒤집어엎자는 급진적 전위주의자들의 실험이 왕성하던 시기였습니다. 전통에 뿌리박고 있었던 피츠너는 이 오페라를 통해 선배 작곡가들의 업적을 존중하자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1917년 이 곡이 뮌헨에서 초연되자 지휘자 푸르트벵글러를 비롯한 사람들은 금세 ‘피츠너가 자신의 모습을 팔레스트리나에 투영한 거로군’ 하고 알아챘다고 합니다. 이런 사연이 있는 만큼 이 오페라도 20세기 초반 작품으로서는 꽤 ‘보수적’이며 처음 들어도 비교적 이해하기 쉽습니다.

2월 2일은 음악사상의 위대한 절충주의자, 보수주의자였던 팔레스트리나가 세상을 떠난 지 420년이 되는 날입니다. 하루 뒤인 3일은 그의 489번째 생일이기도 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한스 피츠너#팔레스트리나#조반니 피에를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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