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흔적을 남기지 말고 떠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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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아웃도어 활동 ‘LNT’ 운동이 뜬다
짐 최소화… 과일 채소, 버릴 것 없게 손질해 가져가야
나무에 리본 달기-돌탑 쌓는 것도 자연 훼손하는 행위

LNT 수칙에 따르면 등산이나 트래킹을 할 때는 가능하면 단단한 지면을 골라 걸어야 한다.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LNT 수칙에 따르면 등산이나 트래킹을 할 때는 가능하면 단단한 지면을 골라 걸어야 한다.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쓰레기 버리지 않기, 나뭇가지 꺾지 않기, 일회용 제품 쓰지 않기….

어렸을 적 학교나 유치원에서 배운 자연 보호 활동 수칙들이다. 현재 등산이나 캠핑을 하는 사람들의 자연보호 활동도 이 정도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웃도어 활동 관계자들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웃도어 인구가 늘어나면서 환경 훼손에 가속도가 붙을 개연성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이 풀밭을 지나가면 작은 바람이 분 것과 같지만, 1만 명이 지나가면 마치 태풍이 분 것과 같은 결과가 생길 수도 있다.

특히 캠핑을 할 때는 더 신경 써야 한다. 자연 속에서 며칠씩 머물며 텐트를 치고, 밥을 짓고, 몸을 씻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변 환경을 훼손하게 되고, 오염시키게 된다.

최근 국내 아웃도어 업체들과 환경 단체 등을 중심으로 친환경 아웃도어 활동을 강조하는 ‘흔적 없이 떠나기(LNT·Leave No trace)’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LNT 운동은 아웃도어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전파한다. 그와 함께 최근에는 친환경 소재나 기술을 이용한 아웃도어 제품들도 연이어 출시되고 있다. 남은 것은 아웃도어 동호인들의 의지다. 동아일보 주말섹션 레츠가 친환경 아웃도어 활동의 방법과 용품들을 소개한다.

캠핑 위치는 물에서 60m 이상 떨어진 곳이 좋다. 제로그램 제공
캠핑 위치는 물에서 60m 이상 떨어진 곳이 좋다. 제로그램 제공
짐도, 사람도 ‘최소화’


친환경 캠핑의 키워드는 ‘최소화’다. 짐을 최소한으로 꾸리고, 캠핑을 할 때도 자연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0’에 가깝게 하는 것이 목표다. 친환경 아웃도어 제품 업체 ‘제로그램’의 이현상 상무는 “심지어 길 안내를 위해 리본을 나무에 매달거나, 돌탑을 쌓는 것도 해서는 안 되는 일 중 하나”라며 “처음에는 다소 빡빡하고 불편하지만 계속해서 반복하면 습관이 된다”고 말했다.

친환경 아웃도어 활동은 집을 나서기 전부터 이미 시작된다. 먼저 방문할 지역에서 금지된 활동은 무엇인지, 캠핑 장소의 날씨는 어떤지 등을 미리 살펴봐야 한다. 이것은 불필요한 물건을 들고 가지 않기 위해서다. 불필요한 짐은 곧 불필요한 쓰레기를 낳는다.

음식도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식사나 간식용으로 챙겨 갈 과일이나 채소가 있다면 껍질은 모두 깎아서 용기에 넣어서 가져가자. 이미 포장되어 나온 통조림이나 과자 등은 불필요한 포장지는 모두 버리고 알맹이만 가져가면 된다.

인원 구성도 중요하다. LNT에서는 한 그룹을 4∼6명으로 유지할 것을 권장한다. 그 이상의 인원이 함께 걸어갈 경우 자연스레 소란스러워지고, 식물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등 자연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등산로에서 앞사람을 앞질러 가기 위해 풀이 무성한 길섶을 밟는 것도 금물이다. 이 상무는 “아스팔트로 된 차도에서 적정 하중을 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캠핑 장소를 정할 때도 신경 쓸 것이 많다. 텐트 위치는 기존에 조성된 야영지를 재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식물들이 잘 자라고 있는 곳에 텐트를 치면 그만큼 자연에 피해가 되기 때문이다. 야영지가 없다면 바위 위나 자갈이 많은 곳, 마른 풀이 있는 장소처럼 자연에 직접 해를 입히지 않는 곳을 택하면 된다. 물론 안전한 곳이라는 전제 하에서다. 텐트는 작고 가벼운 것이 친환경적이다. 작은 공간을 차지할수록 땅과 식물에 주는 피해가 줄어든다.

계곡과 지나치게 가까운 곳도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 LNT에서는 호수와 계곡에서 최소 60m(약 70걸음) 떨어진 곳에서 야영하라고 권한다. 친환경 비영리단체인 아웃워드 바운드 코리아의 정우준 팀장은 “부지불식간에 계곡 물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라면 물 끓이는 발열팩-통나무 버너 쓰면 ‘쓰레기 제로’


과일 껍질, 음식도 버려선 안 돼


앞서 소개한 방법들이 소극적인 활동이라면 적극적인 친환경 캠핑 활동으로는 쓰레기 처리법을 들 수 있다. 이 상무는 “흔히 과일 껍질이나 먹다 남은 음식은 그냥 버려도 된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약이 깨끗하게 씻기지 않은 과일 껍질은 자연 상태에서 잘 분해되지 않아 오히려 피해를 줄 수 있다. 일단 짐을 가져간 다음에 꼼꼼히 주워 오는 방법도 있지만 이 또한 최선은 아니다. 캔과 종이, 일반 음식물쓰레기가 섞여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씻을 때도 조심해야 한다. 몸을 닦을 때는 개울이나 호수에서 60m 이상 떨어진 곳에서, 가져온 물을 이용하는 게 좋다. 그래야 땅에 스며든 물이 고스란히 개울과 호수로 흘러들어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비누나 세제는 생물분해성 제품을 사용하자. 다 쓴 물은 한 번에 버리지 말고 여러 번에 걸쳐 나눠서 버려야 한다. 치약도 쓰지 않는 편이 좋다. 당일 캠핑처럼 가벼운 활동이라면 어린이용으로 나온 구강청결티슈 등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쓰레기도 있는 법. 바로 배설물이다. 배설물은 식수와 야영지, 탐방로에서 50m 이상 떨어진 곳에 15∼20cm 깊이의 구덩이를 파고 해결한 다음 그대로 묻는 방법으로 처리한다. 아무데서나 해결했다가는 발효가 되지 않아 거름으로 활용할 수 없는 데다 암모니아 성분 때문에 나무 등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가장 좋은 것은 배설물 위에 발효를 위한 효소를 뿌리거나 배설물 처리 전용 봉투를 이용하는 것이다.

야생동물에게 음식을 주는 행동도 자제해야 한다. LNT에 따르면 동물에게 사람의 음식을 주면 동물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동물의 습성까지 바꿔 놓을 수 있다. 또 기존 생태계에서 살지 않는 동물을 풀어 주거나 식물을 심는 것도 안 된다.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용품 사용하는 것도 좋아

요즘에는 친환경 아웃도어 활동을 돕는 독특한 콘셉트의 제품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단순히 친환경 소재로 만든 것뿐 아니라, 아웃도어 활동 중에 생길 수 있는 환경 피해를 줄여 주거나 쓰레기가 생기지 않도록 도와주는 아이디어 상품들이다.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식품은 ‘캠핑 때 모닥불은 최소화하라’는 LNT의 원칙에 딱 들어맞는 제품이다. ‘알파미’는 조리가 끝난 밥에서 수분을 제거해 포장한 것이다. 뜨거운 물에 넣었을 때는 10분, 찬물에 넣었을 때는 30분 정도 기다리면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매드아웃도어의 ‘바로쿡’에는 1회용 발열팩이 들어 있다. 물을 붓고 발열제를 담그면 최대 섭씨 97도까지 온도가 오르기 때문에 라면 등 간단한 음식을 조리할 수 있다. 한 시간이 지나도 섭씨 70도가 유지된다.

통나무버너 제공
통나무버너 제공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쓰레기 배출량을 최소화한 제품도 있다. ‘통나무버너’는 지름 18∼27cm에 길이 25cm가량의 통나무를 통째로 연료로 쓸 수 있도록 한 제품이다. 낙엽송으로 만든 이 제품은 통나무 가운데 구멍을 뚫은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 구멍에 연결된 심지에 불을 붙이면 통나무가 연료 역할을 해 버너처럼 쓸 수 있다. 화력의 지속 시간은 4시간 이상이다. 이상용 통나무버너 대표는 “추가 연료가 필요 없고 쓰레기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고 말했다.

제로그램은 자연 그대로의 억새를 이용해 만든 억새 젓가락을 선보이고 있다. 표백제나 곰팡이방지제 같은 화학약품을 쓰지 않고 뜨거운 소금물로 소독한 뒤 자연 건조한 제품이다. 화학약품 처리를 해 잘 썩지 않는 나무젓가락보다 친환경적이라는 설명이다.
     
     
      
▼ LNT 운동의 역사와 현재 ▼

미국서 레저인구 급증한 1970년대 태동
한국선 공공단체-레저업계서 시작 단계

LG패션 라푸마 제공
LG패션 라푸마 제공
LNT 운동의 뿌리는 1970년대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가솔린 버너와 합성수지로 만든 텐트, 침낭 등이 등장하면서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아웃도어 인구 증가에 전통적인 환경단체인 시에라클럽과 보이스카우트 등을 중심으로 아웃도어 활동에도 환경윤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미국 산림청 등에서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는 야외활동 요령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수립을 연구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미국 국립아웃도어리더십스쿨이 유타대와 함께 약 4년의 연구과정을 통해 지금의 LNT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은 LNT 운동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비영리단체 ‘아웃도어 윤리를 위한 LNT 센터’가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LNT 운동은 아직은 시작 단계다. 몇몇 아웃도어업체와 아웃워드 바운드 코리아 등 비영리단체가 교육과정을 마련하고 관련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아웃워드 바운드 코리아는 코오롱Fnc가 진행하는 ‘코오롱스포츠 에코리더십 캠프’에서 환경 저영향 아웃도어 활동법을 교육하고 있다. 친환경 아웃도어 제품을 다루는 제로그램은 LNT의 공식 후원 파트너로, LNT 로고가 부착된 텀블러나 스티커를 비롯한 다양한 친환경 캠핑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LG패션 라푸마는 제품에서 합성수지인 PVC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에코 라푸마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정우준 아웃워드 바운드 코리아 팀장은 “아웃도어 활동 인구가 몇 년 새 급격히 늘어나면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이나 산림청 등 다양한 기관에서 LNT 활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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