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봉사 수녀님들 어디로 가란 말인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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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녀원 만들지 않는다’ 원칙 50년 만에 깨게 된 마리아수녀회

‘마리아 꿈터’에서 아이들을 품에 안은 남고로나 수녀. 아이들은 수녀들을 ‘엄마’라고 부른다. 마리아수녀회는 설립 이후 50년 가깝게 수녀들을 위한 수녀원 공간 없이 아이들과 학생, 미혼모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왔다. 부산=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마리아 꿈터’에서 아이들을 품에 안은 남고로나 수녀. 아이들은 수녀들을 ‘엄마’라고 부른다. 마리아수녀회는 설립 이후 50년 가깝게 수녀들을 위한 수녀원 공간 없이 아이들과 학생, 미혼모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왔다. 부산=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자다가도 아이들 울음소리가 나면 얼른 아이를 달래 다시 재우는 마음은 여느 엄마들과 같아요.”

7일 부산 서구 암남동 ‘마리아 꿈터’에서 만난 남고로나 수녀(64)는 할머니뻘이지만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30년 넘게 이곳에서 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이곳은 만 6세까지의 아동 100여 명을 돌보고 있다. 미혼모가 낳은 아이와 고아, 가정은 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미국 알로이시오 슈월츠 몬시뇰(1930∼1992)이 1964년 창설한 마리아수녀회는 한국에서 출발한 수녀회다. 몬시뇰은 주교품을 받지 않은 가톨릭 고위 성직자. 수녀회는 6·25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와 빈민 환자를 위한 봉사의 목적으로 부산에서 시작됐다. 처음 작은 주택에서 아이들을 돌보다 점점 규모가 커져 현재 암남동에 알로이시오 힐링센터와 알로이시오 전자기계고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여학생 기숙사 ‘송도가정’에는 280여 명, 남학생들이 머무는 ‘소년의 집’에는 300여 명, 송도모성원에는 미혼모 7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가끔 ‘열매’들에게 엄마 수녀들의 안부를 묻는 연락이 오면 무척 뿌듯해요. 이곳 수녀들은 나이를 먹지 않는 것 같아요. (웃음) 성인이 된 친구도 엄마라고 하고, 이제 코흘리개도 엄마라고 부르니까요.”(안셀리나 수녀) ‘열매’는 이곳에서 지내다 성인이 돼 독립한 이들을 가리킨다.

2000년 교황청 직속 수녀회로 인가를 받은 마리아수녀회는 현재 한국뿐 아니라 필리핀, 멕시코, 과테말라, 브라질에서도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정규 교육과 직업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정영숙 수녀회 대표는 “슈월츠 몬시뇰도 아무 연고가 없는 한국 아이들을 위해 평생 헌신했다”며 “설립자 정신에 따라 해외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마리아수녀회는 창립 이후 줄곧 ‘수녀원 또는 자신들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온 것으로 유명하다. 일반인과 함께 잠을 자지 않는 수도자 교리에 따라 잠만 아이들 방 옆의 작은 공간에서 자며 수시로 아이들을 돌봐왔다. 정영숙 대표는 “수녀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없는 것은 소박한 삶과 겸손한 봉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수녀회의 목적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녀회는 50년 가깝게 지켜온 원칙을 깨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내년 8월 새로 시행되는 아동복지시설 운영기준이 ‘아동복지시설 안에서는 보호 아동 및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외에는 거주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만 60세 이상으로 은퇴 뒤에도 아이들을 돌보던 수녀들이 오갈 데가 없어졌다.

“어쩔 수 없이 처음으로 수녀원을 만들고 있습니다. 수녀들의 퇴직금을 모아 비용을 모으고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돕는 일에는 손 벌리는 게 언제나 당당했는데 우리들 일이라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부산=송금한 기자 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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