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WISDOM]마라톤 40Km 통과자보다 완주자가 많다,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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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수의 스포츠 구라젝트

스포츠 마케팅을 하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통계. 42.195km를 뛰는 마라톤에서 일반인의 완주 확률은 얼마나 될까. 20%? 30%? 아니면 50%? 훨씬 많다. 90% 이상이다. 서울국제마라톤에서 마스터스 마라토너는 2010년 93.8%, 2011년과 2012년 각 93.0%가 완주 메달을 받았다. 선수들이 부끄러워할 만한 수치다.

중간에 슬쩍 끼어드는 선수들

반면 참가비까지 입금시키고도 당일 불참하는 사람의 비율은 예상외로 높다. 2010년 22.3%, 2011년 28.7%, 2012년 19.7%가 결석했다. 날씨가 큰 변수인데 2011년에는 비가 온 데다 기온마저 쌀쌀했다. 이에 비해 엘리트 마라토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두 명 빠지는 게 고작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비 좀 온다고,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고 20% 이상이 빠지는 일반 참가자가 완주율은 90%가 넘으니. 답을 찾아보자. 국내 최고 권위의 서울국제마라톤은 기록 측정용 칩을 참가자 전원에게 나눠준다. 골드라벨 대회답게 이 칩은 출발과 골인 지점은 물론이고 5km 단위로 참가자의 기록을 측정한다. 그러다 보니 구간별 통과 인원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우선 전체 참가자와 출발 인원이 일치하지 않는 게 눈에 띈다. 2010년 108명, 2011년 90명, 2012년 77명이 출발할 때는 사라졌다가 중간에 슬쩍 등장했다.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은 시간이 흐를수록 인원이 줄어드는 게 상식이다. 선수들은 마의 구간이라는 30km 지점부터 낙오자 수가 갑자기 늘어난다. 하지만 마스터스 마라토너는 반대다. 2010년 35km 통과자는 1만5599명인 반면 40km 통과자는 1만5713명으로 오히려 114명이 늘어났다. 완주 메달을 받는 도착지에선 참가자 수가 급증한다. 40km 지점 통과자에 비해 2010년 349명, 2011년 506명, 2012년 443명이 늘어났다.

일반 참가자 중 일부는 중간에 힘이 들면 차량을 이용하기도 하고, 코스를 이탈해 최단 거리를 달리기도 한다. 조사해보면 다 나오지만 순위권에 드는 참가자가 아닌 이상 대회 조직위원회에서 이를 문제 삼아 완주 메달을 안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실 앞의 불참률과 완주율은 스포츠 마케팅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매우 중요한 예측 자료이기도 하다.

도중에 지하철 타고 1등 골인

해외에서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모양이다. 2011년 10월 영국에서 열린 한 마스터스 마라톤대회에서 3위로 골인한 남성은 32km 지점에서 몰래 버스를 탄 뒤 40km 지점에서 내렸다. 그의 부정이 밝혀진 것은 대회 디렉터로 참가한 전 올림픽 마라톤 메달리스트 스티브 클램의 의혹 제기에서 비롯됐다. 클램은 “참가자 중 전반보다 후반 기록이 더 좋은 사람이 있다. 마지막 13km를 올림픽 선수처럼 뛰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그 참가자는 메달은 물론이고 향후 출전 자격마저 박탈당했다.

엘리트 선수가 부정을 저지른 경우도 있다. 1980년 4월 보스턴 마라톤에서 여자부 1위를 한 로시 루이츠는 당시로선 역대 세 번째로 빠른 기록(2시간31분56초)이었다. 그러나 대회조직위 관계자가 1등 화환을 목에 걸어 주는 순간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루이츠의 몸은 땀으로 뒤범벅돼 있지도 않았고 지친 기색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고 1등으로 골인한 루이츠는 뉴욕 마라톤에서도 같은 수법을 썼다가 들통 난 속임수 전과자였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선 미국의 프레드 로어즈가 몰래 자동차를 얻어 탄 것이 들통 나 금메달을 받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무리 순위에 연연하지 않는 일반 참가자라고는 하지만 레이스 도중 결혼식을 올린 이색 커플도 있다. 개리 키츠와 레이철 피트는 2010년 4월 런던 마라톤에서 레이스 도중 인근 교회에 들러 50명의 하객 앞에서 20분간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레이스를 재개해 7시간 5분 만에 결승선에 도착했다. 신부 피트는 “내 생애 최고의 날이지만 다시는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2011년 11월 뉴욕 마라톤에선 레이먼 도널드슨과 메리 마틴이 인생의 최대 고비에 비유되는 35km 지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신랑은 턱시도에 반바지를 입었고 신부는 흰색 드레스를 착용했다. 재혼인 두 사람은 3시간54분25초의 좋은 기록으로 레이스를 마무리했다. 신부 마틴은 “우리는 적당한 지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퀴즈 하나. 마라톤 최고 기록은 케냐의 패트릭 마카우가 2011년 9월 베를린에서 세운 2시간3분38초다. 그렇다면 최장 기록은? 답은 54년2일32분20초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때 일본의 가나구리 시조는 레이스 중 사라져 실종자로 처리됐다. 50년 뒤 한 신문사에서 그의 종적을 추적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가나구리는 경기 중 더위를 견디다 못해 어느 집 정원에 쓰러졌고, 집주인이 들어와서 쉬라고 권하자 잠깐 쉰다는 게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저녁에야 깨어난 그는 너무 창피해 몰래 배를 타고 귀국했다. 1966년 75세가 된 가나구리는 스웨덴으로 돌아와 레이스를 마쳤다.

스포츠칼럼니스트 장환수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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