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트레일 200개에 20km 코스까지… 지상 최고의 스키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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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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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콤 산 슬로프에서 가장 높은 해발 2240m에서 바라본 블랙콤 빙하의 급경사 설원. 다져지지 않은 딥스노에서는 파우더스킹을 즐길 수 있어서 이 트레일이 열리는 맑은 날이면 스키어들이 줄지어 몰려든다.
블랙콤 산 슬로프에서 가장 높은 해발 2240m에서 바라본 블랙콤 빙하의 급경사 설원. 다져지지 않은 딥스노에서는 파우더스킹을 즐길 수 있어서 이 트레일이 열리는 맑은 날이면 스키어들이 줄지어 몰려든다.
《전 세계 여행지를 취재하다 보니 나름대로 노하우도 많이 축적했다. 그중 하나는 추위를 이기는 방법인데 핵심은 ‘방한장비’다. 보통 영하 25도인 캐나다 옐로나이프(오로라관광지·노스웨스트 준주)에선 우리 겨울옷으로 못 버틴다.

그래서 현지 여행사는 외지에서 온 오로라관광객에게 두툼한 파카와 방한화 모자 장갑 등 방한장구를 빌려준다. 그런데 이것만 입으면 한밤에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얼어붙은 호수의 눈밭에서 서너 시간씩 오로라를 기다려도 견딜 수 있다. 결론은 방한장비라면 캐나다 것이 최고라는 것이다. 스노모빌도 같다. ‘스키두(Skidoo)’라는 캐나다산이 가장 인기가 높다.》
● 캐나다 휘슬러블랙콤 스키 리조트를 가다


스키장도 같다. 전 세계 스키장을 140여 곳가량 취재했지만 강설량이 많기로는 캐나다의 휘슬러블랙콤(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이 최고다. 2011∼2012 시즌엔 11.9m를 기록했다. 스키장 규모도 그렇다. 미국 최대인 베일(콜로라도 주)의 1.55배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휘슬러와 블랙콤 두 산을 아우른 스키장. 태평양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발달한 산맥에서 나란히 늘어선 두 산줄기의 끄트머리로 ‘피크투피크(Peak to Peak)’라는 곤돌라(길이 4.9km)로 연결됐다.

그런 휘슬러블랙콤이 이젠 북미 스키장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여기서 치른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덕분이다. 그런데 지난달 직접 가보니 그 명성에 부족함 없이 고급스럽고 편안하며 안전한 스키리조트로 가꾸어져 있었다. 마지막에 들른 10년 전보다 규모가 커지고 편의시설과 분위기도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그 올림픽은 적자였다. 하지만 휘슬러블랙콤은 북미 최고로 부상했다. 그러니 반드시 손해만 본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스키리조트
한국 스키어들이 잘 모르는 게 있다. 스키장에서 ‘고도차’(리프트로 오른 정상과 베이스의 높이 차)다. 알프스나 로키산맥 등 거대한 산악에서 스키를 타는 서양에선 고도차가 스키장 규모의 판단기준이다. 고도차가 클수록 스키를 타는 면적이 넓어서다. 높지 않은 산에서 타는 한국에선 그 기준이 ‘리프트 수’다. 고도차 400∼700m 정도에선 고도 차이로 규모가 차별화되지 않아서다.

스키를 얼마나 즐겼느냐를 가늠하는 것도 서양과 한국은 다르다. 우리는 리프트 탑승 횟수나 시간이 기준이지만 여기선 고도차의 총합으로 가늠한다. 캐나다 셀커크 산맥(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CMH 헬리스키를 보자. 6박 7일간 다운힐 고도차의 총계는 3만500m다. 미국 윌러멧패스 스키장(오리건 주)에선 내장된 전자 칩에 입력된 리프트 탑승 정보를 토대로 스키어에게 그날 탄 트레일의 고도차를 합산해 알려준다.

그러면 휘슬러블랙콤의 고도차는 얼마나 될까. 1440∼1609m다. 국내 최대 고도차인 레인보파라다이스(용평리조트) 702m의 두 배 이상이 된다. 산의 고도가 두 배 차라면 스키면적의 차이는 상상을 초월할 수치다. 그런데 휘슬러블랙콤엔 그런 산이 두 개다.

하지만 그렇게 크고 넓은 산에 리프트는 38개뿐(곤돌라 3개·티바 16개 포함)이다. 그게 200개의 스키트레일을 커버한다. 국내에선 리프트 수가 적으면 규모도 작다. 산등성이에 설치한 리프트로는 한두 개의 트레일밖에 지원하지 못하는 지형적 특성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선 다르다. 리프트는 여러 개 트레일이 뻗어나가는 산마루의 거점에 가설된다. 그런 리프트 정상이 휘슬러블랙콤엔 휘슬러 정상(해발 2182m)을 포함해 7개(해발고도 1845∼2182m)나 있다. 스키트레일 200개는 거기서 연결되는데 일주일 내내 타도 다 섭렵하지 못한다. 사흘 내내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두루 돌아다녔어도 직접 다운힐한 트레일은 40개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는데 빙하설원의 딥스노(deep snow)에서 즐기는 파우더스킹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깊은 눈의 급경사면에서 마치 구름 위를 걷듯 다운힐하는 그 묘미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이다.

20km 트레일서 즐기는 환상의 스킹
블랙콤 산 정상 아래 블랙콤 빙하의 설원을 질주하는 스키어의 모습이 아름답다.
블랙콤 산 정상 아래 블랙콤 빙하의 설원을 질주하는 스키어의 모습이 아름답다.
우리나라 스키어는 최장거리 트레일에 관심이 많다. 길수록 스키장 규모가 크기 때문인데 국내 최장은 무주리조트의 서역기행으로 6.1km, 일본 최장은 니가타 현 묘코 고원의 스키노하라 스키장으로 8.5km다. 그러면 휘슬러블랙콤은 얼마나 될까. 아쉽게도 이곳에선 그 길이를 제시하지 않아 알 수 없다. 그 길이가 스키장을 판단하는 데 별 의미가 없어서다. 그렇긴 해도 가늠은 가능하다. 내가 체험해본 가장 긴 것은 블랙콤 산 정상 뒤편의 빙하설원(깊은 눈의 파우더스노·해발 2100m)을 헤치고 내려간 계곡에서 베이스Ⅱ(블랙콤 베이스·해발 760m)로 이어지는 ‘블랙콤글래시어로드’인데 쉬엄쉬엄 가다 보니 40분 이상 걸렸다. 20km는 족히 될 듯싶다.

휘슬러블랙콤엔 이런 코스가 몇 개 더 있다. 휘슬러와 블랙콤 두 산의 리프트 정상에서 초록색 트레일(가장 쉬운 코스)을 따르는 길이다. 휘슬러블랙콤 스키장은 아무리 높아도 반드시 초록색 트레일이 있다. 그래서 초보자도 경치를 감상하며 내려올 수 있다. 하루의 마지막 스키 런을 블랙콤에선 선셋불러바드(초록색)에서 즐기자. 휘슬러라면 라운드하우스 로지(1850m)에서 휘슬러빌리지 베이스(675m)까지 이어진 포니트레일(초록색)이 좋다. ‘리틀휘슬러피크’(2115m)에서 ‘번트스튜 트레일’로 선볼(Sun Bowl·볼은 국그릇처럼 움푹 들어간 지형)을 통과해 빌리지까지 초록색 트레일만 따르는 길도 있다. 모두 7, 8km 이상의 장거리로 중상급자도 30분 이상은 걸린다.

스키보다 더 즐거운 애프터스키
스킹 후 온열 자쿠지에서 피로를 풀고 있는 스키어들. 어퍼타운의 코스트 블랙콤 스위트 호텔.
스킹 후 온열 자쿠지에서 피로를 풀고 있는 스키어들. 어퍼타운의 코스트 블랙콤 스위트 호텔.
애프터스키란 스키부츠를 벗은 이후 즐기는 모든 것이다. 스키 타는 시간은 대게 하루 서너 시간 정도다. 반면 애프터스키는 그 이상이다. 그래서 스키리조트는 스키트레일 외에 애프터스키를 위한 시설―식당 바 스파 오락거리 등등―로도 평가받는다. 그런 면에서도 휘슬러블랙콤은 세계 최고다.

애프터스키로 꼭 해볼 만한 것이라면 ‘퐁뒤 디너’를 추천한다. 퐁뒤는 ‘스위스식 샤부샤부’다. 테이블에서 버너를 켜고 냄비를 올린 뒤 끓는 육수에 꼬챙이로 찍은 고기를 넣고 익혀 먹거나 흰 치즈를 백포도주와 함께 넣고 녹인 다음 잘게 썬 빵조각을 쇠꼬챙이에 꽂아 찍어 먹는다. 추운 겨울에 언 몸 녹이기에 그만이다. 블랙콤의 해발 1845m 크리스털 헛(Hut)은 베이스에서 스노모빌을 직접 몰거나 설상차로 오가며 퐁뒤를 즐기는 식당이다.

이곳 애프터스키 중심은 ‘빌리지’라고 불리는 휘슬러스키장의 상가. 해질녘이면 유럽 알프스의 아담한 마을로 변한다. 아이리시 바는 벌써부터 소란스러운 음악과 이야기 소리로 시끌벅적하고 길가의 예쁜 상점은 쇼핑객으로 번잡하다. 조명장식을 한 나무에선 빨간불이 반짝이고 그 아래에서 아이들은 눈을 뭉쳐 던지며 눈싸움을 벌인다. 캐나다 전국적으로 예쁜 외모의 웨이트리스가 서빙해 찾는 이가 많은 스테이크 식당 ‘얼스’도 보이고 와인스펙테이터(세계적인 와인 잡지)가 최고 레스토랑에 선정한 ‘아락시’도 있다.

휘슬러 빌리지의 밤 풍경. 이 거리는 거닐다 보면 오늘밤이 크리스마스이브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늘 사랑스러운 크리스마스 분위기다.
휘슬러 빌리지의 밤 풍경. 이 거리는 거닐다 보면 오늘밤이 크리스마스이브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늘 사랑스러운 크리스마스 분위기다.
이곳을 거니노라면 매일 밤이 크리스마스이브인 듯하다. 간간이 퍼붓는 눈에 거리풍경이 크리스마스 때 그 모습으로 변해서다. 그 거리에선 온종일 스키로 인한 피로가 기적처럼 사라진다. 벌컥 들이킨 로컬맥주의 상큼함에, 와인을 곁들인 맛있는 저녁식사와 식사 중 오가는 즐거운 대화 속에. 그러면 다시 내일의 스킹이 기다려진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내일 아침이면 오늘과는 또 다른 설원이 펼쳐지고 거기서 다운힐할 때 샘솟는 아드레날린으로 또 다른 극치를 체험할 수 있어서다. 그런 기대 덕분일까, 휘슬러블랙콤의 긴 겨울밤이 더욱 길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맥주와 와인과 친구가 더 귀하게 여겨질 테고.


휘슬러=글·사진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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