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게이 청년의 출구없는 삶… 노골적 성애 묘사마저 비애감 깃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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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김혜나 지음/276쪽·1만3000원·민음사

두 번째 장편 ‘정크’를 펴낸 김혜나는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지만 항상 진짜 현실을 쓰고자 갈구한다. 내 소설의 리얼리티는 여기에서 나온 것” 이라고 말했다. 민음사 제공
두 번째 장편 ‘정크’를 펴낸 김혜나는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지만 항상 진짜 현실을 쓰고자 갈구한다. 내 소설의 리얼리티는 여기에서 나온 것” 이라고 말했다. 민음사 제공

의도보다 전달 방식을 문제 삼는 경우가 있다. 영화감독 김기덕의 문제의식에는 동감하지만 그가 앵글에 담는 잔혹하고 역겨운 날것 그대로의 영상에 몸이 먼저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식이다.

이런 공식을 소설로 옮겨본다면 이 책의 저자(32)를 거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2010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첫 장편 ‘제리’를 통해 뜨거운 신인으로 떠올랐다. 적당한 성애묘사는 머리에 피가 돌 듯 아찔한 쾌감을 주지만 도가 지나치면 속이 불편해지는 이치였다. 지방대 여대생과 호스트바에 다니는 남성의 희망 없는 오늘을 그린 이 소설에서 그가 그린 섹스 장면들은 노골적이었다. 누군가에겐 ‘유희’로, 다른 이에겐 ‘치유’로 읽혔다. 호불호를 떠나 그가 문제적인 신인이 된 것만은 분명했다.

2년 7개월 만에 들고 온 두 번째 장편도 파격적이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엄마를 둔 20대 후반의 동성애자(게이) 성재가 주인공. 성재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고 싶지만 길은 요원하다. 화장품가게 점원으로 일하는 성재에겐 일곱 살 연상의 애인이자 이미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된 민수 형이 있다. 꿈도 사랑도 성재에게는 버겁기만 하다.

소설은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조명한다. 게이들이 주로 모이는 극장이나 찜질방, 호프, 클럽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진다. 대개 장면의 마지막은 격한 성애 장면으로 끝난다. 물론 자극적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19금’ 부류로 읽히지 않는 것은 그 섹스의 마지막에 짙은 비애와 공허감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출입 불가’인 찜질방을 제외하고는 게이들이 모이는 장소를 거의 섭렵했다는 저자. 보통의 동성애자처럼 보건소에 가서 “저, 에이즈 검사 받으러 왔는데요”라고 말하고 검사도 받았단다. 발로 뛴 취재 덕분에 그는 어두운 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 그러기에 그들의 아픔이 솔직하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타인의 아픔을 말하는 듯하지만 기실 저자는 자신의 아픔을 들춰내고 있었다. 그도 20대 초반 꿈도 희망도 없이 방황했다. 소설이라는 출구를 본 다음에 5년 동안 습작했지만 등단이란 벽 앞에 좌절하기를 여러 번. ‘제리’에 이어 ‘정크’까지 그가 우울한 20대에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자는 이제 “힘들었던 지난 경험이 문학적 자산이 됐다”고 밝게 말한다. “동시대 청춘들과 함께 고민하며 절망을 극복하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면 어떨까.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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