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테리어디자인賞 받은 카페 ‘시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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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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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자작나무 탑… 전시대 활용 돋보여
디자이너 정기태씨, 드라마 ‘공주의 남자’ 돌탑 장면에서 영감

도자갤러리 겸 카페 ‘시후담’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은 자작나무판을 쌓아 만든 전시용 탑이다. 기독교인이지만 사찰을 즐겨 찾는 정기태 B613디자인팀 소장은 사찰에서 보았던 전통적인 탑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디자인했다. 정기태 소장 제공
도자갤러리 겸 카페 ‘시후담’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은 자작나무판을 쌓아 만든 전시용 탑이다. 기독교인이지만 사찰을 즐겨 찾는 정기태 B613디자인팀 소장은 사찰에서 보았던 전통적인 탑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디자인했다. 정기태 소장 제공
경기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 갈대숲길을 따라 9번 게이트로 접어들어 100m 넘게 걷다 보면 왼쪽에 아담한 2층 갤러리 카페 하나가 나온다. 접이식 유리문 너머로 발길을 붙드는 것은 단정하게 뻗은 4층 나무탑과 지붕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도자기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통유리 안으로 건물 맞은편의 아담한 산이 통째 들어와 마치 인적 없는 산속에 탑이 고즈넉이 솟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아시아실내디자인학회연맹의 2012 아시아인테리어디자인어워드를 수상한 정기태 B613디자인팀 소장(38)의 수상작 ‘시후담’, 도자 갤러리 겸 카페다.

“청담동이나 홍대 앞 카페와는 다른, 헤이리다운 공간으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도자를 올려놓는 전시대로 공간의 정체성을 표현하기로 했죠.”

‘시후담’의 전시탑 지붕돌에 도자를 올려놓았다. 탑의 지붕돌이 탑의 비례감을 중시해 설계돼 전시 공간을 많이 확보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시후담’의 전시탑 지붕돌에 도자를 올려놓았다. 탑의 지붕돌이 탑의 비례감을 중시해 설계돼 전시 공간을 많이 확보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아이디어는 엉뚱한 곳에서 떠올랐다. “퇴근 후 오전 2∼4시 TV 드라마를 봅니다. 당시 ‘공주의 남자’를 즐겨 봤는데 어느 날 여주인공 문채원이 사랑하는 남자 박시후를 그리며 돌탑에 가락지를 올려놓는 장면이 나왔어요. 아, 나도 탑을 만들어 지붕돌에 도자를 얹으면 되겠구나 생각했지요.”

시후담의 중심은 자작나무로 만든 탑이다. 탑신을 세우고 자작나무판을 겹겹이 쌓은 지붕돌로 4층탑을 올렸다. 1층에 1개, 2층에 4개가 놓여 있다. 전시 작품이 돋보이도록 존재감 없이 설계되기 마련인 여느 갤러리의 전시대와는 다른 전략이다. 속세와 멀리 떨어진 절집에 어울릴 법한 탑 주위를 돌며 도자를 감상하다 보면 과거도 현재도 아닌 모호한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정기태 소장은 “언젠가는 안도 다다오의 ‘물의 교회’처럼 종교 공간을 설계하고 싶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정기태 소장은 “언젠가는 안도 다다오의 ‘물의 교회’처럼 종교 공간을 설계하고 싶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시간의 누적과 몽환성은 정 소장 작품의 키워드다. 2009년 세계 도자 비엔날레에서 인기를 끌었던 곰방대 가마 조형물은 켜켜이 나무를 쌓은 오브제로 ‘여러 겹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나무’를 표현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뷰티숍 ‘피움 끌레’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해놓은 해인사 장경판전에서 느낀 누적의 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카페 ‘페이지11’은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에 존재할 법한 생명체를 상상하다 만들어낸 하얀 선인장을 주요 오브제로 삼아 공간을 설계했다.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감독을 좋아해요. 인류에 존재하지 않은 시간과 존재했던 시간을 공존시키는 그의 이야기가 좋아요. 시간성을 두지 않으면 유행을 타지 않아 질리지 않습니다.”

대학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한 정 소장은 2004년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부식철판으로 마감한 주택 ‘에스 하우스’가 건축전문월간 ‘공간’에 소개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어린왕자’가 사는 별 ‘B612’의 옆동네 별에서 이름을 따온 회사 ‘B613디자인팀’을 차려 갤러리와 카페를 중심으로 건축과 실내 디자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예전엔 제 디자인이 어떻게 보일지에 신경을 썼습니다. 요즘은 제가 설계한 공간이 주위와 어울려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 있으면 행복해지는 그런 공간이어야죠.”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시후담#정기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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