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폭력으로 관객 압박하며 폭력을 욕하는 ‘남영동’ 김근태는 뭐라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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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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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감독 영화 ‘남영동 1985’. 아우라픽처스 제공
정지영 감독 영화 ‘남영동 1985’. 아우라픽처스 제공
‘남영동 1985’(이하 ‘남영동’)를 보고 나서 이 영화를 비판하기란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온갖 잔혹한 방법으로 고문당했던 지옥의 20여 일을 세밀화 그리듯 묘사하는 이 작품을 보고 ‘재미없다’고 감히 평가한다는 것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수많은 민주열사들의 영혼을 짓밟아 버리는 ‘반민주적인’ 언사처럼 여겨질 공산이 300%이기 때문이다.

‘남영동’은 정지영 감독의 전작 ‘부러진 화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나는 본다. 억울한 사연을 가진 실화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심하다’ 싶을 만큼 그를 짓밟고 학대함으로써 관객의 감정을 주인공에게 이입시키고, 피해자의 입장이 된 관객이 집단으로 울분을 토해내게 만듦으로써 사회적 이슈를 생산해내고 이것이 흥행으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따르려는 듯 보인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남영동’은 ‘부러진 화살’과 유사한 동시에 동떨어져 있기도 하다. ‘부러진 화살’이 치열한 법정공방과 촘촘히 배열된 사건들을 통해 관객을 ‘설득’하려 했다면, ‘남영동’은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각종 고문 기술들에 의해 피해자가 짐승처럼 학대당하며 피폐해져 가는 모습을 마치 ‘실시간’인 양 찬찬히, 잔혹하게 보여주면서 1985년 당시 남영동 고문실을 관객이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일종의 ‘지옥 체험’에 방점을 찍고 있다.

당초 ‘남영동’의 이런 방향성은 흥행을 위해선 꽤 영리한 설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배우 출신 멜 깁슨 감독이 만들어 떼돈을 벌었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년)와 상업적인 지향점이 동일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예수의 고행을 담은 수많은 영화가 있어 왔기에 이 영화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이 영화가 세계적 화제의 중심에 섰던 것은 바로 예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예수에 ‘빙의’되도록 만드는 이 영화의 태도 때문이었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못 박히는 순간까지 예수가 느꼈을 고통을 이 영화는 관객이 고스란히 체험하도록 만든다.

‘남영동’ 속 주인공 김종태(박원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려 90분의 시간 동안 영화는 고문실에 갇힌 김종태가 구타, 물고문, 고춧가루고문, 전기고문 등 짐승이 아니고선 행할 수 없을 법한 고문에 무너지는 모습을 ‘너무하다’ 싶을 만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물고문을 당하다 배가 남산처럼 불러 오르며 똥을 지리고, 전기고문을 당하다가 고환이 탄다. 관객은 스크린을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처절한 고통을 느끼면서 제발 이 고통의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주인공의 고통을 90분 넘도록 관객이 온몸으로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 이 또한 관객에 대한 학대와 폭력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시대의 폭력을 비판하기 위해 그 폭력을 고스란히 전시하는 또 다른 의미의 억압과 폭력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평생 이 땅의 진정한 민주화와 평화를 위해 영혼을 바친 김근태 전 고문이 살아계셨더라면, 폭력으로 관객을 압박하면서 폭력을 욕하는 이 영화를 정녕 ‘민주적’이라고 생각하셨을까. 재생산되는 폭력, 이 폭력의 내러티브를 어찌할 것인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남영동#정지영#민주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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