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철컥, 잘가당”…43년째 달군 ‘가위 고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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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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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부이촌동 세나미용실
70세 미스 최-60세 미스 리-49세 미스 손, 하루종일 엿장수 가위소리

《 ‘철컥철컥’, ‘잘가당잘가당’. 엿장수 가위 소리가 신명나게 들린다. 그런데 소리의 근원지가 좀 이상하다. 엿장수가 막 도착한 동네 어귀일 것 같지만, 소리는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한 미용실에서 나고 있다. 이곳은 무려 43년이나 된 세나미용실. 그곳에서 70세의 미스 최, 60세 미스 리, 49세 미스 손이 불에 달궈 쓰는 옛날식 ‘고데기(머리 인두)’로 하루 종일 엿장수 가위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가위 소리는 반지하 미용실에서 도로 아래로 난 낮은 창문을 타고 거리로 울려 퍼진다. 》
○ 43세 ‘가위 모양 고데기’ 70세 ‘미스 최’

70세의 ‘미스 최’, 최정자 세나미용실 원장이 43년 된 고데기를 들고 단골손님의 머리를 매만지고 있다. 세나미용실의 화려했던 전성기는 지나갔지만 그는 43년째 동부이촌동을 지키며 노년이 된 단골손님들을 맞고 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70세의 ‘미스 최’, 최정자 세나미용실 원장이 43년 된 고데기를 들고 단골손님의 머리를 매만지고 있다. 세나미용실의 화려했던 전성기는 지나갔지만 그는 43년째 동부이촌동을 지키며 노년이 된 단골손님들을 맞고 있다.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우리 미용실에서는 20년, 30년 된 물건은 명함도 못 내밀어요.” ‘미스 최’ 최정자 원장(70)이 큰 가위처럼 생긴 물건을 들고 말했다. 최 원장은 올해로 70세가 됐지만 80, 90세가 된 단골손님들에게 아직도 ‘미스 최’라 불린다. 그가 든 ‘큰 가위’에는 날카로운 날 대신에 둥글고 긴 봉이 달려 있다. ‘큰 가위’ 곳곳에는 거뭇거뭇한 흔적이 세월처럼 남았다. 고열에 달궈졌다 식기를 수만 번 거듭한 탓이다. 요즘 미용실에서는 플러그를 꽂아 쓰는 전기 ‘고데기’를 사용하지만 이 미용실에서는 전기곤로나 연탄에 달궈 쓰던 1960, 70년대식 ‘가위 모양 고데기’를 43년째 쓴다. 나이 든 고데기가 머리 위를 몇 번 오가고 나면 60세에서 많게는 90세가 넘는 단골손님의 힘없는 머리카락이 어느새 힘이 생겨 봉긋하게 부풀어 오른다.

40년 이상 된 건 고데기뿐만이 아니다. 손님이 ‘헤어 롤’을 가득 말고 들어가 앉으면 컬이 만들어지도록 열기를 가득 쏟아내는 투명 헬멧 모양의 헤어드라이기, 손님이 완전히 누운 자세로 머리를 감을 수 있게 하는 샴푸대도 모두 40년이 훌쩍 넘었다. 최신식 미용기구로 무장한 요즘의 미용실에서는 더이상 쓰지 않는 골동품들이다.

사람들도 미용 기구들만큼이나 오래됐다. 이갑례 씨(60)는 1969년 동부이촌동의 한 건물 3층에서 처음 문을 연 세나미용실이 아파트 건물 반지하로 이사 오던 1979년 들어와 60세가 된 지금도 ‘미스 리’로 남아 있다. ‘미스 손’ 손미심 씨(49) 역시 20년 가까이 이곳을 떠나지 않고 미스 리와 천상의 호흡을 맞추고 있다.

미용실은 1979년 동부이촌동 안에서 한 번 이사를 했을 뿐 43년간 1960년대 기구를 그대로 쓰며 동네를 지키고 있다. 그들이 지금도 쓰는 미용기구들은 어느 사이엔가 젊은 사람들을 화들짝 놀라게 하는 신기한 도구가 됐다. 최 원장은 “이제는 구식 기구가 됐지만 이 고데기를 써야만 머리 뿌리부터 컬이 들어가서 머리가 한층 더 힘 있고 풍성해진다”며 “전기 고데기를 쓰면 훨씬 편리하겠지만, 40년 넘게 이 고데기만 찾는 단골손님들이 있어 절대 버릴 수 없다”라고 했다.

사람도 물건도 모두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충분한 미용실. 하지만 정작 지금 이 미용실을 찾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다. 미스 리가 진짜 미스였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이 미용실은 앉을자리가 없을 만큼 손님이 많았고 그만큼 고데기 잘강거리는 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지금 세 ‘미스’는 간간이 고데기를 들고 호흡을 맞출 뿐이다.

○ 고데 하면 3, 4일간 머리 안 감기도


오른쪽 위 사진은 젊은 시절 최 원장이 메이크업을 배우는 모습. 아래 사진은 60세 ‘미스 리’(오른쪽)와 49세 ‘미스 손’(왼쪽)이 호흡을 맞춰가며 고데기로 머리를 손질하는 모습.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오른쪽 위 사진은 젊은 시절 최 원장이 메이크업을 배우는 모습. 아래 사진은 60세 ‘미스 리’(오른쪽)와 49세 ‘미스 손’(왼쪽)이 호흡을 맞춰가며 고데기로 머리를 손질하는 모습. 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옛날식 고데기가 최신식 기구였던 1970년대는 세나미용실의 최전성기였다. 지금은 미용사가 최 원장을 포함해 3명뿐이지만 당시에는 20명에 가까웠다.

세나미용실의 전성기는 한강맨션아파트가 1960년 대 말 동부이촌동에 들어선 것을 계기로 1970년대 초부터 시작됐다. 한강맨션아파트는 대한주택공사가 지은 최초의 중산층 아파트였다. 당시로서는 ‘초대형 아파트’라 할 만한 188m²(57평)형 가구까지 있었던 이 아파트에는 유명 연예인, 대기업 임원, 군 장성 가족 등이 속속 입주해 명성을 떨쳤다. 부유층들이 한강맨션아파트로 몰려간다는 소식에 당시 미용실의 메카였던 명동의 미용실들이 하나둘 분점을 내거나 아예 옮겨오는 형식으로 동부이촌동에 문을 열기 시작했다. 명동에서 손꼽히던 스왕미용실에서 경력을 쌓은 미스 최도 그즈음 세나미용실을 열었다.

한강맨션아파트의 흥행 성공으로 한강변을 따라 3000가구가 넘는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세나미용실은 큰 호황을 누렸다. “지금은 고데기가 3개밖에 없지만 그때는 10여 개를 동시에 써도 모자랄 정도였어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손님들이 북적거렸죠. 고데기가 식을 틈이 없었죠.”

1970, 80년대 이어진 군사정권의 흥망은 세나미용실의 성쇠와 궤를 같이했다. 최 원장에 따르면 그 시절 군 관계자들은 자주 모여 파티를 열었다. 파티에 참석해야 할 군 장성 부인들은 머리를 할 곳이 필요했다. 한강맨션아파트 등 인근 고급 아파트에 살던 그들은 세나미용실에 몰려 뜨끈하게 달궈진 가위 고데기로 머리를 부풀려 단아하게 올린 뒤 파티에 갔다. 인근에 거주하던 고위 공직자 부인, 기업 임원 부인들도 월요일이면 세나미용실에 와서 고데기의 열을 한껏 올려 머리를 부풀렸다. 미용실에 다녀온 그들은 그 머리를 3, 4일간 그대로 유지하다 머리가 풀어질 때면 다시 미용실을 찾아 머리를 감고, 다시 최소 3일은 풀어지지 않을 머리를 하고 돌아가길 반복했다. “공기가 오염되지 않은 시절이라 며칠 안 감아도 냄새가 안 났다”는 게 최 원장의 설명이다.

그 시절에는 집에서 머리를 손질할 미용기구가 거의 없어 세나미용실은 더 호황을 누렸다. 미용실에 가지 않으면 머리를 제대로 감기 힘든 시대이기도 했다. 여성학 연구자인 김미선 씨의 저서 ‘명동 아가씨’에 따르면 1968년 당시 여성의 43%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미용실을 이용했고 80% 이상은 2주일에 한 번 꼭 미용실에 갔다. 최 원장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가위 고데기를 써서 최대한 머리를 부풀리기를 원했고 그 머리가 최대 일주일까지 가기를 바랐다”라고 했다.

고데기가 많은 손님과 세월을 거치면서 얇게 닳아졌을 무렵 1987년 민주화항쟁이 시작됐다. 군부독재는 끝났고 파티가 열리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또 세월이 지나 고위 관직에 있던 남편들이 은퇴를 하자 부인들은 예년만큼 자주 미용실을 찾지 않았다. 그 사이 ‘미스 리’가 아닌 젊은 ‘이 선생님’들을 내세우고 최신식 미용기구로 무장한 프랜차이즈 대형 미용실이 늘어났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강남에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면서 고급 미용실들이 강남으로 옮겨가 문을 열었다. 사람들도 강남의 고급 미용실로 몰리기 시작했다.

○ 그곳엔 언제나 ‘미스’들이 있다

이제 세나미용실은 이곳에 오랜 추억을 묻어둔 사람들만이 찾는 숨은 장소가 됐다. 1969년부터 이곳을 찾는 단골손님 대부분은 옛날 기구를 그대로 쓰는 직원들이 좋아 다른 곳으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노년이 된 단골손님들은 ‘요즘 미용실’과 달리 그 시절, 그 연배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해주는 세나미용실 사람들이 좋아 이곳을 찾는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버린 단골들이 하나둘 유명을 달리하기 시작하면서 손님들이 줄고 있다. 최 원장은 “최근에도 43년 된 단골손님이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매주 오던 손님이 어느 날부터인가 보이지 않아 알아보면 돌아가신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그 긴 세월을 잃어버린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했다.

이제 미용사 단 3명만이 남은 세나미용실. 한때 화려했던 미용실은 마치 그런 세월이 있기는 했었느냐는 듯, 이따금씩만 고데기 소리를 내며 고요했다.

미스 리와 미스 손, 그리고 원장인 미스 최는 이제 미스로 불리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나이가 들었지만 미용실을 떠날 생각이 없다. 아직도 그 시절 그 기구와 그 스타일을 찾아 추억의 미스들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이민 가서 20년 동안 산 손님이 한국에 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용실에 들렀대요. 근데 아직도 그 미용실이 거기 있더래요. 그래서 ‘혹시 미스 리 있나요’ 하고 물었는데 제가 불쑥 그 자리에 그대로 나타났대요. 그 시절 쓰던 고데기를 들고서요. 그 시절이 그대로 있다는 게 좋아서 그렇게 울컥했대요. 내가 단지 아직도 여기 있다는 것에 감격하는 그분들이 있는 한 죽을 때까지 여기를 떠날 수가 없어요.” 미스 리는 “이 선생님이기보다 편안한 미스 리로 평생 남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그들의 전성기는 지났고, 개발의 상징이었던 한강맨션아파트는 재건축을 기다리는 중이다. 하지만 세 명의 미용사는 여전히 가위 고데기를 들고, 아직도 그들을 찾는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고데기는 43년 세월 동안 닳아 없어진 부분만큼 조금은 가볍게 ‘잘가당잘가당’ 하며 아직도 그곳에 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가위 고데기#세나미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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