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익 키오브 대표 “여자요? 좋아하지만 LP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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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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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환자’에서 ‘LP제작자’로 변신

이 사람은 ‘LP 환자’였다. 지금은 ‘갱생’했다. 서보익 대표의 깊은 병은 LP를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었다. 그는 “음반 표지만 봐도 음악이 들린다”고 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 사람은 ‘LP 환자’였다. 지금은 ‘갱생’했다. 서보익 대표의 깊은 병은 LP를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었다. 그는 “음반 표지만 봐도 음악이 들린다”고 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1990년대 중반, 레코드 소매점에서 LP가 사라졌다. 감상과 관리가 편하고 반영구적인 CD에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음반사들이 대부분 ‘돈 안 되는 사업’을 접은 것이다. LP는 중고시장으로 밀려났다. 이후에도 특별판 개념으로 소량 제작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극히 드문 일이었다.

이런 시대를 서보익 키오브 대표(41)는 ‘역주행’하고 있다. 2009년 LP 전문 회사를 만든다고 차린 게 키오브다. 미쳤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실, 그는 진즉 미쳤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기타와 LP에 푹 빠졌다. 최근 만난 그는 ‘오타쿠(한 가지 일에 지나칠 정도로 몰두하는 이를 일컫는 일본어)’ ‘환자’라는 기자의 ‘진단’을 거부하지 않았다.

지난달 그의 첫 음반 시리즈인 ‘플레이 33 1/3’ 1차분이 빛을 봤다. 아이돌 것도, 중견가수 것도 아니다. 미국의 명연주자 팻 메스니와 찰리 헤이든이 협연한 ‘비욘드 더 미주리 스카이’, 알 디 메올라, 존 매클로플린, 파코 데 루치아가 함께한 ‘기타 트리오’(이상 1996년), 존 매클로플린의 솔로앨범 ‘더 프로미스’(1995년). 해외에서도 CD로만 발매된 것들을 서 대표가 세계 최초로 LP화한 음반들이다. “망하지만 않으면, 다음 시리즈 제작비만 나오면 계속 내겠다”고 한 그가 망하지 않아서일까. 이르면 다음 달 말에 2차분인 마이클 브레커의 ‘테일스 프럼 더 허드슨’, 허비 행콕의 ‘더 뉴 스탠더드’(이상 1996년), 찰리 헤이든의 ‘녹턴’(2001년)을 낸다. “독일의 LP 공장에서 2차분 제작에 들어갔다”는 그의 목소리에 윤기가 넘친다.

서 대표의 삶은 ‘갱생 스토리’에 가깝다. ‘LP 환자’였다고 자인한다. “꼬마 때부터 LP 모으고 기타 치는 데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썼어요.” 그는 대구대 응용미술학과에 들어간 뒤 ‘병’이 더 깊어졌다. 디자인의 세계에 발을 디딘 뒤 LP 수집벽이 더 심해졌다. 틈만 나면 외국에 나갈 궁리를 했다. “유학이나 어학연수, 여행은 다 핑계였죠. 영국에 갔는데 버킹엄 궁과 LP 가게가 나란히 있으면 LP 가게만 갈 정도였으니까.”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해 온 서 대표는 늦은 밤에는 세계적인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서 LP 전문 딜러로도 ‘암약’했다. 본인도 1만5000장 넘게 LP를 모았다. 눈에 불 켜고 수집만 하지 말고 ‘LP를 내가 직접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 재즈 음반사와 직접 접촉해 재발매 승인을 받아내고 독일의 유명 LP 생산업체(‘마스터 미디어 프로덕션’)에 ‘판’ 제작을 하청했다. CD 표지 디자인을 CD의 다섯 배 크기인 LP에 맞게 확대하고 재편집하는 일에는 서 대표와 아르바이트생 몇 명이 직접 수작업으로 매달린다. 아직 결혼도 못 했다.

“여자요? 좋아하는데, 연구할 만한 가치는 (LP보다) 떨어져요.” 이 사람, ‘환자’ 맞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LP판#서보익#키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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