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聖의 숨결 밴 땅에서 자연과 교감하는 삶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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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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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형준 타고르 71주기 맞아 ‘韓印 학술문화제’를 다녀와서

인도 콜카타에 있는 ‘타고르 하우스’의 타고르 동상에 기댄 박형준 시인(왼쪽 사진). 지난달 한국-인도 문인 교류 행사 참석을 위해 인도를 다녀온 시인은 “빈자(貧者)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타고르가 살아있었다”고 전했다. 타고르의 생가인 ‘타고르 하우스’는 인도 문인들에겐 교류의 장이었으며 현재는 박물관 등으로 운영된다. 사진작가 양현모 씨 제공
인도 콜카타에 있는 ‘타고르 하우스’의 타고르 동상에 기댄 박형준 시인(왼쪽 사진). 지난달 한국-인도 문인 교류 행사 참석을 위해 인도를 다녀온 시인은 “빈자(貧者)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타고르가 살아있었다”고 전했다. 타고르의 생가인 ‘타고르 하우스’는 인도 문인들에겐 교류의 장이었으며 현재는 박물관 등으로 운영된다. 사진작가 양현모 씨 제공
《 시성(詩聖)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861∼1941)와 시인 박형준(46)이 만났다. 시인은 7일 타고르의 71주기를 앞두고 지난달 말 ‘인도를 생각하는 예술가 모임’(회장 김춘식)이 인도에서 개최한 제5회 한국-인도 문학예술인 국제학술문화제에 다녀왔다. 육사시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 동서문학상 등을 받은 박 시인은 10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인도의 시성과 나눈 교감을 글로 보내왔다. 》
소음과 평화가 한자리에 있는 곳, 콜카타(옛 캘커타)와 거기서 기차로 세 시간 떨어진 샨티니케탄. 너무나 대조적인 두 장소에서 인도의 시성 타고르를 보았다.

평화(샨티)와 장소(니케탄)가 합해진, 조합해보면 평화의 장소라는 뜻의 샨티니케탄. 그 호숫가 마을에서 한 아낙이 물 단지에 물을 채웠다가 다시 따르는 의식을 되풀이했다.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끊임없이 담았다가 비워내는 여행인 것인지. 릭샤(자전거택시)를 타고 유칼립투스로 가득한 숲 속 한가운데로 들어갔다가 만났던 시장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엔 그런 곳이 있었다. 숲 속에 널찍한 마당을 펼쳐놓고 동네 사람들이 만나 서로 안부를 묻고 물건을 파는 그런 시장이 존재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선다는 그 마켓은 샨티, 그야말로 평화 자체였다.

샨티니케탄 비스바바라티대학에서 열린 이번 문화제는 타고르의 서거일을 맞아 인간의 고통과 구원을 주제로 했고, 양국 문학의 접점에 타고르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세계와 함께하는 인도’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 대학은 1901년 타고르가 설립했다. 5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학교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아우르는 교육의 요람으로 성장해 지금은 음악 미술 무용 문학 등 예술 분야의 인도 최고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

타고르는 어린 시절 획일적인 수업에 염증을 느꼈던 탓에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는 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실천하고자 했다. 우리는 신화를 사실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하지만 신화나 자연은 사실로 들어가기 위한 의미 있는 작업이며 나아가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역사를 바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타고르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생명의 분수와도 같은 나무들 밑에서 아이들의 외침과 노래와 유쾌한 목소리를 들으며 ‘기탄잘리’ 시편을 써내려갔던 것이다. 자연과의 호흡 속에서 자유로운 상상력과 현실 인식이 태어난다. 선생님 대신 ‘다다(큰형)’와 ‘디디(큰언니)’로 부르는 이 땅에서 자란 타고르와 아마르티아 센 교수가 노벨문학상과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29년 4월 일제강점기 한국 민중을 위해 동아일보에 게재한 시 ‘동방의 등불’에서 코리아를 ‘동방의 밝은 빛’이라 노래했던 타고르. 그는 식민지 상황에 놓인 조선의 현실을 과거형인 ‘빛나던 등촉’으로 표현했고, 앞으로 다가올 희망은 미래형인 ‘동방의 밝은 빛’으로 형상화했다. 서구의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자치의 옹호’를 ‘등불’로 표현한 것으로 타고르의 민족주의를 넘어선 세계 시민으로서의 열린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샨티니케탄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콜카타로 향했다. 콜카타에는 타고르의 생가인 타고르하우스가 있다. 하루에도 수십만의 사람과 온갖 짐승들이 넘나드는 콜카타의 하우라 다리 밑을 흐르는 흙빛 후글리 강 아래로 꽃시장 ‘물리크 가트’가 펼쳐져 있었다. 질척거리는 진창 속에서 꽃을 치장하고 파는 사람들, 그 형형색색의 꽃시장을 지나자 강물 속에서 몸을 씻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막대기 같은 똥을 물속에 뚝뚝 떨어뜨리는 사람 곁에서 천연덕스럽게 그 강물로 이를 닦는 노인을 보았다. 타고르는 “새들은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도 한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양립할 수 없는 듯이 보이는 이승에서의 삶의 문제와 그것을 넘어선 구원의 문제에 대해 쉽사리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다만 콜카타 진창 속에서 형형색색으로 피어나는 꽃들처럼 타고르의 삶과 시가 가장 가난한 이들의 가슴 속에서 환영처럼 떠다니는 듯해 가슴이 아려왔다.

박형준 시인
#박형준#타고르#학술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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