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번지점프를 하다’, 무대 영상미학 ‘박수’… 11년 전 영화의 감동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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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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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로 환생한 ‘번지점프를 하다’ ★★★☆

“저랑 왈츠 추실래요.” 태희(전미도·오른쪽)는 인우(강필석·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일방적이고 조용한 구애를 춤으로 받아들인다. 춤추는 과정에서 인우의 날아갈 듯한 감정이 객석까지 전달돼야 하기 때문에 연기하기가 쉽지 않다. 뮤지컬해븐 제공
“저랑 왈츠 추실래요.” 태희(전미도·오른쪽)는 인우(강필석·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일방적이고 조용한 구애를 춤으로 받아들인다. 춤추는 과정에서 인우의 날아갈 듯한 감정이 객석까지 전달돼야 하기 때문에 연기하기가 쉽지 않다. 뮤지컬해븐 제공
2001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뮤지컬로 극화한 ‘번지점프를 하다’는 결론적으로 영화의 재미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 주된 이유는 영화 개봉 시점과 지금 뮤지컬 사이 11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 낸 사회적 변화 때문이다.

꼽아보자면 세 가지다. 첫째, 당시로선 미지의 레저스포츠였던 번지점프를 제목으로 가져와 호기심을 한껏 불러일으켰지만 지금은 한물간 레포츠라는 점. 둘째, 영화는 ‘사랑했던 여자가 남자로 환생했다. 그래도 사랑할 수 있나’라고 물으며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금기와 ‘운명적 사랑’을 대결시켜 짜릿한 판타지를 획득했지만 요즘은 동성애가 대중문화에서 단골로 다뤄질 만큼 흔해빠졌다는 점. 셋째, 영화는 연인을 두고 남자가 입영열차를 타야 하는, 사회적으로 충분히 공감대를 끌어낼 만한 안타까운 상황을 통해 이야기의 개연성을 높였던 반면 지금은 육군 복무기간이 1년 11개월까지 줄어 헤어짐의 안타까움이 약화됐다는 점이다.

그 대신 뮤지컬은 기존의 영상 미학을 끌어안으면서 이를 무대 문법으로 치환하는 솜씨를 과시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2007년 연쇄살인을 다룬 엽기 잔혹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서 뛰어난 연출력과 무대 디자인으로 호흡을 보여줬던 아드리안 오스몬드 연출가(각색도 겸임)와 정승호 무대디자이너가 이 작품에서 다시 호흡을 맞췄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부임한 인우(김우형)는 첫 수업시간에 ‘첫사랑 얘기를 들려 달라’는 학생들의 요청에 17년 전 대학생 시절 자신의 우산 속으로 뛰어들었던 운명적인 사랑 태희(최유하)를 떠올린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지만 인우는 곧 군에 입대할 처지. 입영열차를 타기 전 인우는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한 태희를 기다리지만 태희는 나타나지 않는다. 인우는 자기 반 남학생 현빈에게서 17년 전 사고로 숨진 태희의 자취를 느낀다.

비교적 원작에 충실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데 암전 없이 등장인물들의 연기 변화나 동선을 활용한 시간여행이 매끄럽다. 무대 전면에 사방으로 움직이는 가림막을 설치해 관객이 보는 무대의 크기를 줄이기도 하고 키우기도 하면서 영화의 클로즈업 촬영 기법 같은 효과를 냈다. 17년의 간격을 두고 태희와 현빈이 인우를 만나기 위해 기차역 앞길을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태희와 겹쳐진 현빈을 인우가 재회하는 장면은 조명, 음향과 출연진의 호흡이 만들어낸 명장면이었다.

영화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에 맞춰 인우와 태희가 춤췄던 장면의 음악은 작곡가 윌 애런슨의 왈츠곡이 대신한다.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의 작곡가인 애런슨이 작곡한 뮤지컬 넘버 22곡은 친숙하고 편안한 멜로디라 공연이 끝난 뒤 흥얼거리게 하는 점은 있지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진 못한다. 공연 초반이어서 그런지 배우들의 연기는 섬세한 멜로 연기의 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경직된 느낌을 줬다.

: : i :
: 인우 역에 강필석 김우형, 태희 역에 전미도 최유하가 번갈아 무대에 선다. 9월 2일
까지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6만∼8만원. 1544-1555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뮤지컬#공연 리뷰#번지점프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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