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슈]황당 막무가내 ‘김여사’, 男들보다 인명사고는 덜 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여자는 운전 못한다고 타박들 하는데… 女 드라이버를 위한 변명

‘김여사 시리즈’는 잊을 만하면 등장해 인터넷을 또 달군다. 어떤 누리꾼은 말한다. “김여사 전용도로를 하나 깔아주자.” 이에 동조하는 무수한 댓글들. 웃음이 나오지만 한편으론 씁쓸하다. 김 여사는 정말 운전 실력이 없을까.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촬영협조 토이저러스
‘김여사 시리즈’는 잊을 만하면 등장해 인터넷을 또 달군다. 어떤 누리꾼은 말한다. “김여사 전용도로를 하나 깔아주자.” 이에 동조하는 무수한 댓글들. 웃음이 나오지만 한편으론 씁쓸하다. 김 여사는 정말 운전 실력이 없을까.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촬영협조 토이저러스
2000년대 중반, 사진 한 장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초보’ 딱지를 붙인 소형 승용차가 거침없이 역주행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 운전자의 성별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그 사진 속 운전자에게 ‘김여사’란 별명을 붙였다. 이후 김여사는 더 자주 언급됐다. 트렁크에 배추를 잔뜩 실은 차, 논두렁에 처박힌 차, 사이드미러에 핸드백을 건 차 등 다양한 사진들이 ‘김여사 시리즈’란 타이틀을 달고 등장했다. 인터넷 포털 백과사전엔 아예 김여사가 신조어로 등재됐다. ‘교통법규를 무시하거나 운전에 서툴러 소통을 방해하는 운전자’를 지칭하는 단어로 말이다.

○ 아줌마? 답답한 운전 떠올라

한동안 뜸했던 김여사란 말이 다시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올해 4월 말.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딸을 마중 나온 중년 여성이 운동장에서 다른 여학생을 차량으로 들이받았다. 문제는 다음 상황. 브레이크를 밟아야 함에도 중년 여성은 당황한 나머지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여학생이 크게 다쳤다. 이 장면을 지켜 본 누리꾼들은 그 여성에게 거친 분노를 쏟아내며 ‘운동장 김여사’란 달갑지 않은 별명을 붙였다.

그리고 얼마 전, 김여사가 또 한 번 인터넷 검색어 1순위에 등극했다. 이른바 ‘김여사 종결판’의 등장. 지난해 9월 주차장 내 폐쇄회로(CC)TV에 찍힌 뒤 최근 화제가 된 영상이다. 영상 속에선 차 한 대가 왼쪽 벽에 차체를 긁으며 들어온다. 그러더니 그대로 직진해 정면의 벽과 충돌한다. 연기가 나는 차에서 당황한 여성이 내린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여성이 차 안의 무엇을 건드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차가 후진한다. 결국 운전석 문짝과 범퍼가 벽에 부딪혀 박살이 난다.

그런데 이 김여사 시리즈. 그냥 보고 넘기기엔 뒷맛이 씁쓸하다. 김여사란 표현 때문이다. 이 말에는 여성 운전자를 무시하고 비하하는 뜻이 담겨 있다. 도로교통공단 강남운전면허시험장의 채범석 박사는 “예전부터 남성들이 여성 운전자를 깔보는 시선이 있어 왔다”며 “특히 중년 여성들에 대한 그런 불편한 시선이 유머와 결합해 대중적인 유행어로 재탄생한 게 김여사”라고 했다.

사람들은 김여사란 말에 담긴 의미를 어떻게 생각할까.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는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강남운전면허시험장을 찾았다. 남녀 15명씩 30명에게 여성의 운전 실력이 남성에 비해 서툴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매우 그렇다’고 답한 사람이 무려 26명, ‘그렇다’고 답한 사람이 4명이었다. 반면 ‘조금 그렇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 사람은 전혀 없었다. 임지훈 씨(22·대학생)는 “일단 ‘아줌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막무가내 운전’”이라며 “운전 경력 1년 차 남성과 경력 10년 차 아줌마 운전자의 차 가운데 하나를 타라고 한다면 전자(前者)를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보험연구원이 자동차 운전자 57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사고 발생횟수’는 여성 운전자가 0.18회로 남성 운전자(0.13회)보다 많았다. 여성의 평균 주행거리(약 12184km)가 남성(약 16701km)보다 짧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실제 여성의 사고율은 더 높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직업별로 나눈 결과를 보면, 주부의 사고 발생횟수가 0.22회(주행거리 약 9572km)로 조사한 직업군 가운데 가장 많았다.

보험개발원의 ‘자동차보험 사고로 본 교통사고현황 분석’을 봐도 여성의 사고율(사고 건수를 보험 가입 차량수로 나눈 값)은 남성보다 높게 나타난다. 가장 최근 자료(2010년 4월∼2011년 3월)에선 여성의 사고율이 6.6%인 반면 남성의 사고율은 5.6%. 그 직전 자료(2009년 4월∼2010년 3월) 역시 여성 6.8%, 남성 5.8%로 여성의 사고율이 1%포인트 더 높다. 보험개발원의 한 관계자는 “보통 남성들의 주행거리가 더 길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질 것”이라며 “보험사에서 성별과 주행거리 등을 고려해 보험료 산정기준을 세분화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전했다.

○ 여성 운전자, 큰 사고는 적게 내

여성의 운전 실력이 남성에 비해 서툰 게 사실이라면 그 이유는 뭘까.

미국의 남성전문 온라인 잡지 ‘애스크맨(AskMen)’은 2009년 ‘여성들이 운전을 못하는 이유 톱 10’을 발표했다. 잡지가 전한 1위는 ‘유전적인 차이’. 남성은 공간 지각을 담당하는 우뇌가 발달해 운전을 잘하는 반면, 여성은 언어적 능력을 담당하는 좌뇌가 발달해 실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2∼5위로 ‘운동 신경의 차이’, ‘운전에 대한 관심 부족’, ‘차에 대한 관심 부족’,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 등이 꼽혔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과 자동차공업협회가 공동으로 전국 7개 지역의 여성 운전자 519명을 대상으로 안전 운행 실태를 조사한 내용도 참고할 만하다. 조사 결과 다수의 여성 운전자가 운전 중 ‘휴대전화 통화’(76.5%), ‘내비게이션 작동’(65.4%), ‘휴대전화 문자 송수신’(40.1%) 등 산만한 행동을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상삼각대의 사용법을 모른다’는 운전자가 전체의 절반 정도(43.7%)가 됐고, ‘차량의 냉각수와 엔진 오일 점검할 줄 안다’는 운전자는 26.2%에 그쳤다. 안전 의식과 정비 지식의 부족은 여성들의 운전 능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흥미로운 주장도 있다. 미국의 미시간대 연구진은 미국에서 발생한 650만 건의 교통사고 사례를 분석해 그 결과를 지난해 발표했다. 연구진은 여성의 사고 비율이 남성보다 높은 주요한 이유로 평균 신장 차이에 주목했다. 상대적으로 남성에 비해 키가 작은 여성들은 시야 확보, 공간 인지 등에 어려움이 있어 운전을 잘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미국 워릭대와 조지아대 공동 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연구 조사 결과도 눈길을 끈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을 운전 실력이 비슷한 남성과 여성, 두 그룹으로 분류했다. 그러고선 운전 실력에 대한 자기 평가를 받았더니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자신의 운전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훨씬 컸다. 연구진은 이번엔 여성 참가자만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눈 뒤 절반에겐 운전 전에 격려를 해주고, 나머지에겐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운전을 시켰더니 격려받은 참가자들의 운전 실력이 월등히 좋았다.

결과와 관련해 연구진은 “‘항상 남성이 여성보다 운전을 잘한다’는 선입견이 여성에겐 일종의 부정적인 암시가 돼 운전 실력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해석했다. 또 “자신감은 여성의 운전 실력에 영향을 끼치는 결정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을 근거로 여성 운전자들에게 ‘김여사’란 주홍글씨를 새길 수 있을까.

운전 경력 5년 차인 직장인 정미경 씨(32). 그녀는 지금까지 작은 접촉 사고 한 번 낸 적이 없다. 운전은 물론이고 주차 실력도 회사 팀원들이 인정해줄 만큼 수준급이다. 정 씨는 “과속을 잘한다고 운전을 잘하는 게 아니지 않냐”면서 “오히려 여성의 경우 상대적으로 꼼꼼하고 섬세해 운전을 더 능숙하게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서울의 한 운전면허시험장에서 만난 시험관의 생각도 비슷했다. 그는 “여성분들은 대개 겁이 많아 처음 운전을 배울 때 실력 향상 속도가 느리다. 하지만 그 기간만 지나면 기계 조작, 운전 이해도 등의 측면에선 오히려 남성보다 더 뛰어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여성의 운전 실력은 남성보다 좀 떨어질지 몰라도 안전운전을 하기 때문에 큰 사고는 상대적으로 적게 낸다는 주장도 있다. 도로교통공단의 ‘운전자 성별 사상자수’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해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자 수는 남성(2만1831명)이 여성(5296명)보다 4배가량 많았다. 사망자 수를 비교하면 남성(1680명)이 여성(104명)보다 무려 16배나 많았다. 남성 운전자가 여성보다 많고, 평균 주행거리 역시 길다는 점을 고려해도 매우 큰 차이. 그만큼 중상으로 이어지는 대형 사고일수록 여성 운전자 비율은 낮아진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채널A 영상] 여고생 들이받은 ‘운동장 김여사’


#김여사#여성 운전자#자동차 사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