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보다… 미술을 듣다… 백남준이 빙긋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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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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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준아트센터 ‘x_사운드: 존 케이지와 백남준 이후’전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는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과 미국의 전위작곡가 존 케이지의 역사적 만남을 기리는 ‘x_사운드’전을 열고 있다. 소리를 탐구하는 이번 전시에선 턴테이블이 회전하면서 소품과 마찰하는 사운드를 들려주는오토모 요시히데의 ‘위드아웃 레코드’, 존 케이지의 ‘장치된 피아노’를 재구성한작품, 백남준의 ‘새장 속의 케이지'가 선을 보였다.(위부터 시계반대 방향)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는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백남준과 미국의 전위작곡가 존 케이지의 역사적 만남을 기리는 ‘x_사운드’전을 열고 있다. 소리를 탐구하는 이번 전시에선 턴테이블이 회전하면서 소품과 마찰하는 사운드를 들려주는오토모 요시히데의 ‘위드아웃 레코드’, 존 케이지의 ‘장치된 피아노’를 재구성한작품, 백남준의 ‘새장 속의 케이지'가 선을 보였다.(위부터 시계반대 방향)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 한 남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고 피아노만 바라보더니 4분 33초 만에 퇴장한다. 청중은 당황했고 음악이 부재한 공간엔 일상의 소리가 자리했다. 미국의 전위작곡가 존 케이지(1912∼1992)가 1952년 처음 발표한 ‘4분33초’란 작품이다. 선율과 리듬을 배제하고 일상 소음과 관객의 반응 등 우연적 요소를 곡의 일부로 끌어안아 음악의 새 지평을 연 급진적 작품으로 국내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등장하기도 했다. 일본과 유럽에서 현대음악을 배웠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은 케이지의 음악과 선(禪) 사상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스승과 제자 관계에서 차츰 예술적 동반자로 발전한 두 사람은 상대 작품에 기꺼이 ‘찬조출연’하는 등 평생 친밀한 인연을 이어갔다. 》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 탄생 80주년과 존 케이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x_사운드: 존 케이지와 백남준 이후’전을 마련해 고정관념을 깨고 예술의 새 영토를 개척한 20세기 음악과 미술의 두 거장을 조명하고 있다. 전시는 7월 1일까지. 2000∼4000원. 031-201-8571

○ 역사적 만남에서 예술적 대화로

1층 전시는 백남준의 작품에서부터 출발한다. ‘새장 속의 케이지’는 부서진 피아노 조각이 놓인 새장에 케이지의 모습을 담은 모니터를 설치한 작품이다. 새장(cage)이란 뜻을 가진 이름을 활용한 재치가 번뜩인다. 소음과 라디오 소리를 녹음한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1958년), 케이지의 활동상을 기록한 영상 ‘존 케이지에게 바침’(1973년), 그의 서거 소식을 듣고 제작한 부채 ‘귀거래’(1992년)까지 케이지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듬뿍 담겨 있다.

이어 케이지의 작업으로는 ‘1 침묵, 2 침묵, 3 침묵’ 등으로 이뤄진 ‘4분33초’의 악보, 라디오 12대의 주파수와 박자를 그려낸 ‘상상풍경4번’을 추계예대 학생들이 연주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선보였다.

이들의 만남이 예술적 대화로 승화된 과정도 엿볼 수 있다. 케이지는 피아노 줄에 나사와 못 등을 끼워 다른 소리의 개입을 이끌어낸 ‘장치된 피아노’를 만들었는데 백남준은 한발 더 나아가 건반을 누르면 전구와 라디오가 켜지는 등 변형과 파괴를 시도했던 ‘총체 피아노’를 선보였다. 1965년 제작된 영상 ‘변주곡 5번’에선 머스 커닝엄 무용단의 춤, 무용수의 동작에 따라 영향을 받는 케이지의 사운드 시스템, 백남준이 조작한 텔레비전 이미지 등이 결합을 보여준다. 백남준아트센터 박만우 관장은 “전위예술가로서 두 사람이 시도한 음악적 실험은 경직돼 있던 서구 음악 전통을 이완시켜 그 관절과 근육을 유연하게 만들고 신선한 피돌기와 뇌호흡을 가능하게 했다”고 소개했다.

○ 시각에서 청각으로

2층 전시실에는 눈과 귀의 감각을 확장해주는 국내외 작가의 사운드 설치작품이 즐비하다. 관객의 오감을 깨워 참여를 이끌어낸 현대미술의 흐름이나, 소리가 현대미술의 매력적 소재가 되는 데 두 거장의 행보가 일조했음을 보여주는 코너이다.

하룬 미르자의 경우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그는 미니멀리즘 작가 프레드 샌드백의 선 드로잉을 발광다이오드로 재구성한 뒤 어둠 속에서 사물의 소리와 함께 작품이 나타났다 사라지게 했다.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 작가로 선정된 안리 살라의 ‘대답 좀 해’는 비디오와 드럼으로 소리에 담긴 정서적 긴장을 역사적 맥락과 겹쳐 놓았다.

특이하게도 로리스 그레오의 ‘큰 소리로 생각하라’는 소리의 부재를 통해 소리의 힘을 부각한다. 그는 록밴드 ‘소닉 유스’의 기타리스트에게 가장 좋아하는 곡을 마음속으로 연주해보라고 주문한 뒤 그의 ‘침묵’을 사진으로 찍어 선보였다. 2010년 영국의 터너상을 받은 수전 필립스는 제임스 조이스 소설에 등장한 16세기 스코틀랜드의 비가를 편곡해 직접 노래한 작업으로, 90개의 턴테이블에 골판지 등을 올려놓고 마찰로 ‘합창’을 만들어낸 오토모 요시히데의 ‘위드아웃 레코드’ 등도 소리-공간-몸을 잇는 예술체험을 선사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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