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와 공통점이 많았던 뮤지컬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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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4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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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도전한 ‘안중근’과 ‘영웅’…5일 마지막 공연

국내 창작 뮤지컬 ‘영웅’이 올해로 벌써 4번째 시즌을 맞았다. 지금까지 숨 가쁘게 달려온 ‘영웅’의 행보는 작품 속 주인공 항일독립운동가 안중근(1879.9.2~1910.3.26) 의사와 매우 닮아 있었다. 일본의 통치를 받던 당시, 대한제국 의병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고된 시련과 역경을 묵묵히 이겨내며 그들에 맞서 ‘대한제국’ 독립의지를 전달했다. 안중근이 그랬듯 ‘영웅’도 끝없이 도전하며 대한민국 뮤지컬의 새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창작극의 어려운 현실에도 당당

우선 작품 제작 자체가 모험이었다. 뮤지컬은 예술작품이면서 동시에 상업적인 활동 수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익은 필수요소다. ‘영웅’ 총괄 연출을 맡은 윤호진(64) 에이콤인터네셔널 대표는 2007년, 2009년에 있을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 ‘영웅’ 제작에 들어갔다. 윤 대표는 중국 하얼빈 기차역 등 현지를 직접 방문해 연출 시 필요한 영감을 얻어왔고 초고가 나온 극본을 47번이나 고치는 등 혹독하게 준비했다.

결국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제작기간 3년, 제작비용이 50억 원 투입된 초대형 뮤지컬 ‘영웅’이 만천하에 공개 됐다. 하지만 이처럼 빈틈없는 준비과정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이유는 ‘창작극’이란 꼬리표 때문. 한 마디로 수익 검증이 안됐다는 얘기다. 특히 창작극이 흥행에 실패하면 손해가 엄청나다. 이로 인해 현재 대한민국 대형뮤지컬 시장에서 창작극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작품·수익성이 이미 검증된 해외 라이선스 공연 일색인 현실 앞에 창작극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영웅’은 그런 창작극에 목말랐던 관객들에게 ‘가뭄의 단비’처럼 등장했다.

전 세계 공연의 중심지
브로드웨이 무대 성공적

지난해 8월 ‘영웅’은 1997년·1998년 ‘명성황후’ 이후 13년 만에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돼 화제를 모았다. 제작사 에이콤에 따르면 ‘영웅’의 뉴욕 공연은 2009년 국내 초연 때부터 기획됐다. 브로드웨이는 모든 공연 관계자들의 꿈의 무대다.

2010년 각종 뮤지컬 시상식에서 작품상·남우주연상 등을 휩쓴 ‘영웅’은 이듬해 화려한 수상경력에 힘입어 브로드웨이 링컨센터 데이비드 코크 극장에 입성한다. 미국 대표 신문 매체인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들도 멀리 한국에서 날아온 ‘영웅’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며 격려했다. 지난 브로드웨이 공연은 전 세계에 우리 작품 수준을 알린 뜻 깊은 무대가 됐다. 또한 대한민국 뮤지컬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칠전팔기 끝에 오페라하우스 입성
한 달 간의 뉴욕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영웅’은 2011년 12월 국립극장을 거쳐 지난달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빗장까지 풀었다. 오페라하우스는 공연장 특성화 정책 때문에 기존에는 오페라·발레 등의 대관만 허락했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1월은 보통 공연 비수기라 오페라 등과 같은 공연 수요가 적다”며 “장르 폭을 넓히기 위해 어느 정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웅’에 대관을 허락했다”고 밝혔다.

에이콤 관계자는 “국내에 대형 뮤지컬이 공연될 수 있는 장소가 턱없이 부족해 줄 곧 예술의전당에 대관을 신청했다”며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는 최고의 음향시설과 넉넉한 좌석이 구비돼있어 배우들이 최적의 공연을 펼칠 수 있고 관객들에게는 보다 더 질 높은 공연관람을 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인공 안중근 역을 맡은 조휘(조성범·31)는 “배우로서 예술의전당 무대에 선다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라며 “오페라하우스의 뛰어난 음향시설 덕분에 관객들에게 감정전달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했다.

연출부의 파격적 캐스팅
배우 조휘(안중근 역)와 17살 신예 이수빈(링링 역)양을 과감히 발탁한 것도 인상적이다. ‘영웅’은 그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될 것이다. 조휘는 대형 뮤지컬 첫 주연을, 이수빈양은 ‘영웅’을 통해 대형 뮤지컬의 첫 발을 내딛었기 때문이다.

조휘는 초연부터 브로드웨이 공연까지 조도선 역을 맡다가 이번에 안중근으로 올라섰다. 연출부는 그동안 돈주앙, 몬테크리스토 등 여타 작품에서도 비중 있는 조연으로 실력을 쌓아온 그의 가능성을 인정하며 주인공 한 자리를 기꺼이 내줬다. 17살 이수빈 양은 쟁쟁한 뮤지컬 배우들을 재치고 링링 역을 꿰찼다.

인간적 면모 돋보인 조휘
표현력 뛰어난 이수빈

조휘가 연기한 안중근 의사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재탄생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두려움, 갈등, 아픔에 무게를 잘 실어 냈다는 평이다. 특히 안중근의 인간적 면모는 어머니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빛이 났다. 어머니 앞에서는 강인한 ‘대한제국 참모중장’ 모습이 온데간데없고 여린 아들만 존재했다.

이와 반대로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놓일 때에는 그의 목소리가 180도 바뀌며 관객을 압도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재판 받을 때 부르는 ‘누가죄인인가’, 사형을 앞두고 울려 펴지는 ‘장부가’의 파워풀한 가창력은 압권이다.

이수빈양은 어린나이지만 ‘쩌렁쩌렁’ 공연장을 가득 메우는 목소리와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줘 미래에 주목할 만 한 재목으로 떠올랐다.

장 아쉬웠던 ‘라이브 연주’
‘영웅’은 국립극장에서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로 공연장을 옮긴 뒤 몇몇 뮤지컬 넘버를 수정하고 관객을 맞이했다. 실물 크기의 기차를 올리는 무대장치와 추격 신에서의 역동적인 군무가 여전히 극에 활력소를 넣어줬다. 이토 히로부미도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표현해냈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그 좋은 공연 환경에서 실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라이브 연주와 배우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졌다면 좀 더 진한 감동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5일 상반기 공연이 종료되는 뮤지컬 ‘영웅’은 조휘(오후 2시)와 정성화(오후 6시30분)가 오페라하우스에서 안중근 역을 번갈아가며 맡게 된다. 이후 오는 9월 관객들을 다시 찾아갈 예정이다.

정진수 동아닷컴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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