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한번 읽고 웃은 뒤에 돌연사 ‘살인 유머’의 정체 파헤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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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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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 1, 2/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이세욱 옮김/
각권 1만1800원·1권 400쪽, 2권 464쪽·열린책들

한 미치광이가 정신병원 담장에 기어 올라가더니, 호기심 어린 눈으로 행인들을 살피다가 한 남자를 불러서 물었다. “이봐요, 그 안에 사람들이 많아요?”

이 소설에 실린 유머 한 토막. 한 번 피식 웃고는 금세 잊어버리기 쉬운 얘기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흔한 유머에 주목했다. 대체 우리 주변에 떠돌아다니는 작자 미상의 수많은 우스갯소리를 누가 만들었을까. 혹 이런 유머들을 생산, 유포하는 조직적인 세력이 있지는 않을까.

‘개미’ ‘뇌’ ‘타나토노트’ 등으로 기발한 상상력의 세계를 선보였던 작가는 이번에 유머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우스갯소리는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문학예술의 한 갈래다. 사람들은 그것을 아이들과 실없는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으로 치부하며 무시하기 일쑤”라고 작가는 지적한다.

프랑스의 ‘국민 코미디언’인 다리우스가 대형 코미디 콘서트를 마친 뒤 홀로 분장실에 있다가 숨진 채 발견된다. 분장실 밖에 있던 경비원은 다리우스가 크게 웃었고 뒤이어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한다. 경찰은 사인을 심장마비로 판단했지만 주간지 여기자 뤼크레스는 분장실에서 말린 종이가 들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 상자를 하나 발견한다. ‘혹 어떤 글을 읽은 뒤 다리우스가 죽지 않았을까. 상자를 준 사람이 범인이고 이 사건은 타살이다’라고 확신한 뤼크레스는 전직 과학전문 기자 이지도르의 도움을 받아 다리우스의 죽음을 추적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베르나르 베르베르
평범한 범죄 스릴러로 가던 작품은 점차 확장한다. 한 번 읽고 웃은 뒤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수천 년을 전해 내려온 ‘살인소담(殺人笑談)’의 존재가 점차 드러난다. 이 ‘살인 유머’를 차지하기 위해 ‘유머 기사단’이란 비밀 조직과 유머를 대량 생산해온 유머 기업이 피비린내 나는 혈전을 치른다. 중세 종교전쟁의 막후에까지 ‘살인 유머’가 있었다고 그럴듯하게 전하기도 한다. 작품 자체를 하나의 견고한 농담의 성(城)으로 지은 셈이다.

다리우스의 죽음을 추적하는 두 기자가 목숨을 걸고 유머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작가는 800쪽을 넘는 작품이 지루하지 않게 100여 편의 유머를 양념처럼 삽입했다. 그럼에도 2권 중반 기자들이 유머 기사단의 본부에 들어가 신입 단원 교육을 받는 과정은 장황하고 지루하다. 작품 내내 가장 강력한 호기심을 이끌어 냈던 ‘살인 유머’의 정체는? 힌트를 주자면 허무 개그에 가깝다.

유머의 생산과 유통, 사회학적 의미와 역사까지 전달한, 범죄 스릴러로 풀어본 유머 총론이다. ‘개미’를 읽고 나서 흔하게 보던 개미가 달리 보였듯이, 이 작품을 읽고 나서는 유머 한 토막도 색다르게 다가온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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