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지교를 꿈꾸며]소리꾼 이자람-연출가 남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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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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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판소리 새판 짜기’
소리판 확 뒤집은 女 女 “好 好”

이자람 씨(아래)에게 연출가 남인우 씨는 무대 작업을 함께하는 단순한 동료 이상이다. 이 씨는 “(모든 걸) 허락받고, 칭찬받고, 확인받고, 인정받고 싶은 사람” 이라고 표현했다. 남 씨는 이 씨에 대해 “친구이면서 가족 같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자람 씨(아래)에게 연출가 남인우 씨는 무대 작업을 함께하는 단순한 동료 이상이다. 이 씨는 “(모든 걸) 허락받고, 칭찬받고, 확인받고, 인정받고 싶은 사람” 이라고 표현했다. 남 씨는 이 씨에 대해 “친구이면서 가족 같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판소리는 전통의 틀을 깨고 진화 중이다. 그 물결의 선두에 소리꾼 이자람(32)이 있다. 이 씨가 창작해 2007년 선보인 ‘사천가’와 올해 초연한 두 번째 작품 ‘억척가’는 판소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쉈다. 서양 고전을 다루면서 그것을 ‘지금, 여기’의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로 풀어냈다. 두 작품에서 이 씨는 소리 중심의 소리꾼의 한계를 뛰어넘어 탁월한 이야기꾼이자 팔색조처럼 변신하는 연기자로 객석을 휘어잡았다.

도제식 정통 판소리 교육을 받은 그가 어떻게 ‘재기와 창의력이 넘치는 무대예술의 종합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최근 몇 년간 이 씨가 보여준 발전은 두 작품을 함께 만든 연출가 남인우 씨(37)를 빼고 설명하기 힘들다.

지난달 30일 서울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끝난 사천가 앙코르 공연장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국악그룹 ‘타루’에서 활동하던 2005년 겨울에 남 연출님을 처음 만났어요. 저는 세 작품을 옴니버스 형태로 무대화하는 작품을 기획 중이었고, 친구인 연출자 김소리 씨(극단 북새통 대표)를 통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선배를 소개받았죠. 바로 남 연출님이셨어요.”(이)

남 씨는 2004년 연극 ‘가믄장아기’와 2010년 ‘행복한 왕자’로 서울어린이연극상 작품상, 극본상, 연기상을 두 차례나 휩쓴 아동청소년 연극 전문 연출가다.

“연습실 복도에서 처음 봤을 때 이자람의 그 당돌함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어디서 본 것 같다’고 했더니 생글생글 웃으며 ‘제가 좀 유명했어요’라면서 ‘예솔아∼’ 하고 노래를 부르더라고요.”(남) 이 씨는 네 살 때인 1984년 아버지 이규대 씨와 함께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로 시작하는 ‘내 이름 예솔아’를 불러 인기를 끌었다.

남 씨는 이 씨의 첫 창작 판소리 ‘구지 이야기’를 함께 작업하면서 이 씨의 작가적 능력을 높이 샀다. 이 씨가 2006년 정동 아트프런티어에 선정돼 ‘사천가’를 만들 때 이 씨에게 대본을 쓰도록 밀어붙인 이도 그였다. 남 씨는 “자람에게 창작을 끝까지 밀어붙였던 게 이제껏 연출자로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이 원작인 사천가 대본에는 당시 20대였던 이 씨의 온갖 경험이 다 담겼다. 남 씨와 시시콜콜 주고받은 대화들이 그럴 듯한 이야기로 발전했다. 사귀던 남자에게 차인 실연의 경험은 극중 ‘견식’이라는 캐릭터로 발전했다.

“연출님은 제게 ‘작가’라는 포지션을 명확하게 정해주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게 해줬어요. 제가 모르고 꺼내는 말들의 이유를 찾아주고, 초심을 잡아주고, 극의 구조를 함께 짜줬죠.”(이)

남 씨가 원작에 나오는 비행사를 소믈리에로 바꾸면 어떨까 한마디 하면 이 씨는 와인을 다룬 만화책 ‘신의 물방울’을 이틀 만에 섭렵하고 걸맞은 대목을 써서 나타났다. 이 씨의 연기력도 두 사람의 자유로운 소통 속에서 끌어올렸다. 남 씨는 캐릭터의 개념과 이미지만 제시하고 이 씨 내면의 잠재된 끼가 이를 통해 스스로 발현되기를 기다렸다.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을 번안한 ‘억척가’에서 용병대장의 움직임도 그렇게 나왔다. “‘미국 만화 속 역삼각형 몸매의 럭비 선수가 느껴지는데’라고 하니까 자람이가 즉석에서 어깨를 좌우로 크게 흔들며 ‘어허어허’ 하고 움직였죠.”

‘억척가’는 작업이 ‘사천가’보다 수월했다. 남 씨는 “억척가는 거의 이자람 혼자 만들었다. 내 역할은 20, 30%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씨의 작가적 역량이 크게 성장한 덕이다.

사천가와 억척가는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결성한 단체 ‘판소리만들기 자’의 자랑할 만한 성과물이다. 판소리의 현대화를 선도하고 있는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말했다.

“지금은 너희 공연의 정체가 뭐냐고 했을 때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만, 언젠가는 판소리라는 단어 하나로 ‘동시대성과 재미, 작품성을 다 내포하는 장르’를 설명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판소리라는 단어를 다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죠.”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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