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오장육부… 몸속의 마법상자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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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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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고미숙 지음/448쪽·1만7900원·그린비

동양의학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신형장부도’. 인체의 등쪽에 있는 관들은 ‘양생을 위해 기를 수련할 때 정기가 오르내리는 길’이라고 한다. 이 그림은 ‘동의보감’의 첫 장인 ‘내경편’ 첫 쪽에 나온다. 그린비 제공
“솜을 작고 둥글게 뭉쳐 감초 달인 물이나 단것에 적신다. 위험할 때 아이의 입에 묶어놓아 그것을 빨게 한다. 아이의 입에 물건이 채워져 있으니 저절로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고, 솜은 부드러워 아이의 입이 상하지도 않는다. 이 방법을 써서 많은 이를 살렸으니, 모르면 안 된다.”(동의보감 잡병편)

1610년 허준(1539∼1615)이 완성한 ‘동의보감’에 실린 ‘피란 갈 때 소아의 울음을 멎게 하는 방법’이다. 일종의 처방전이라 할 수 있는데 역사 드라마 속 한 장면 같다. 민중의 고난을 담아낸 의술에 괜스레 가슴이 뻐근해진다. 감초와 물, 솜 같은 소박한 재료가 이토록 소중하게 쓰일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동양 최고의 의학서로 꼽히는 동의보감 속엔 어렵고 생소한 용어가 가득할 것만 같다. 분량이 25권(번역본은 총 2500여 쪽)에 이르고 목차만 100여 쪽이나 되니 읽어볼 엄두도 내기 힘들다. 실제로 동의보감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지만, 이를 제대로 아는 한국인도 거의 없다. 하지만 고전평론가인 저자는 “동의보감으로 가는 입구는 생각보다 훨씬 매끄럽다. 단순한 의학적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발랄한 유머, 소름끼치는 공포, 가슴을 찡하게 하는 이야기가 넘치는 보고”라고 강조한다.

2003년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풀어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으로 고전 열풍을 일으킨 저자가 이번엔 허준의 동의보감으로 돌아왔다. 10여 년 전 몸속에 작은 종양이 생겼다는 저자는 “그냥 잘라내라”는 의사에 말에 반감이 생겨 나름의 치유법을 모색하다가 질병과 몸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동의보감을 만났다.

동의보감을 알기 쉽게 풀어낸 이 책은 몸과 질병을 바라보는 동서양 의학의 차이에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서양의학은 질병을 없애야 할 것으로 간주하고 자연과 신체를 분리된 개체로 여긴다. 해부학이 발달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의학은 질병과 죽음을 빼곤 삶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태어난 이상 누구나 온갖 병을 앓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다는 생각에서다. 여기서 몸은 정(精) 기(氣) 신(神)이 어우러지는 자연의 일부다. 이 때문에 동양의학에선 질병을 없애는 데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질병이 생겨난 몸을 제대로 살펴 양생(養生·몸과 마음을 편안히 하고 병에 걸리지 않음)하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이 스승의 시신을 해부하는 장면이 가장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동의보감은 양생법에 따라 살면 인간이 120세까지 살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동의보감에 기반을 둔 이 책도 답답하고 화나며 불안한 현대인들이 어떻게 자신 안의 치유본능을 깨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지에 주목한다. 또 현대인이 얼마나 양생과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구체적인 예를 들며 상세히 알려준다.

현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무엇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까. 저자는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은 걷기”라고 말한다. 몸의 기운을 순환시킴으로써 망상을 멈추게 하며 환경에도 엄청나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 같은 맥락에서 잘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덜 먹기’다. 동의보감 내경편에도 “하루의 금기는 저녁에 포식하지 않는 것이고, 한 달의 금기는 그믐에 만취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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