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마을 미술관, 관장님은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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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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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흥 양사리 남포미술관 설립 곽형수 관장

후학들의 교육을 위해 사재를 털었던 아버지의 유업을 잇기 위해 폐교를 고쳐 남포미술관을 설립한 곽형수 관장과 조해정 부관장 부부의 웃음이 환하다. 교육자에서 미술관장이 된 곽 관장은 “백지에 그림 그리기가쉽잖아요. 서툴지만 천천히 가는 것도 좋아요”라고 말했다. 고흥=고미석 기자mskoh119@donga.com
후학들의 교육을 위해 사재를 털었던 아버지의 유업을 잇기 위해 폐교를 고쳐 남포미술관을 설립한 곽형수 관장과 조해정 부관장 부부의 웃음이 환하다. 교육자에서 미술관장이 된 곽 관장은 “백지에 그림 그리기가쉽잖아요. 서툴지만 천천히 가는 것도 좋아요”라고 말했다. 고흥=고미석 기자mskoh119@donga.com
《나로도 우주센터와 이웃한 전남 고흥군 영남면 양사리. 목청 좋은 닭들의 꼬끼오 소리로 새벽을 열고, 확성기를 타고 농사 정보가 울려 퍼지는 시골마을이다. 70여 가구가 사는 이 한적한 동네에 전남 제1호 사립미술관이 자리한다. 등 뒤에 팔영산, 앞마당 저 멀리 남해가 보이는 남포미술관이다. 폐교된 영남중 건물을 고쳐 2005년 개관한 이후 현대미술을 소개하고 공연, 교육프로그램도 펼치는 복합문화센터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곳이다. 2일 미술관 마당엔 5t 트럭이 큰 짐을 부려놓았다. 국내 정상급 조각가 7명이 참여하는 ‘움직이는 예술마을’전에 선보일 작품들이다. 미술관을 설립한 곽형수 관장(61)은 크레인까지 동원해 작품을 야외에 설치하느라 종일 땀을 비 오듯 흘렸다.》
이튿날 오전 5시 반. 어김없이 잠에서 깬 그는 ‘청소 책임자’로 나서 마당의 풀을 뽑고 화장실을 청소하느라 분주했다. 오후엔 조명과 전기설비 책임자로 변신해 작가들과 실내 전시를 마무리하느라 쉴 틈이 없는데도 관광객이 찾아오자 어느새 ‘전시 해설자’가 되어 작품에 대해 설명한다.

“가난한 미술관이라 돈 들어가는 일은 모두 ‘몸으로 때운다’는 자세로 운영합니다. 몸은 힘들지만 지역 사람들에게 좋은 작품을 보여주는 일이라 보람이 있죠.”

일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타 공인하는 곽 관장. 지난달엔 인근 소록도에서 환자들이 참여하는 전시를 기획해 호응을 얻었다. 척박한 문화 소외 지역에 예술의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전방위로 활동하는 하루하루는 고되어도 목소리엔 늘 힘이 넘친다.

○ 아버지의 이름으로


미술관 이름의 ‘남포’는 그의 아버지(곽귀동·1914∼1978)의 호. 소학교만 졸업한 아버지는 고향 후배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자 수산업에서 번 돈으로 1967년 중학교를 설립했다. 소 팔고 논 팔아 교사들 월급 주며 어렵사리 유지하던 학교는 평준화교육이 실시되면서 반짝했다가 학생 수가 줄어들자 2003년 반강제적으로 폐교되는 운명에 처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눈물나죠. 첩첩산중에 학교 만든다고 다들 말리는데도 피땀 흘려 아버지가 세운 학교를 허무하게…. 아버지가 꿈꾼 육영사업의 연장선으로 미술관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여수, 순천, 광양처럼 잘사는 도시에도 없는 미술관이 고흥에 생긴 거죠.”

이곳의 전시와 공연은 무료다. 순전히 개인의 힘으로 외진 마을에서 미술관을 운영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가시밭길. 허리띠를 조이고 땅도, 나무도 팔아가며 운영비에 충당했다. 처음엔 소장품 위주로 작은 전시장을 운영했고 지금은 3개 전시실, 체험학습실을 갖추고 연간 6, 7회 기획전을 연다.

지역 미술관으로 수준 높은 전시를 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2007년 민화전을 열었을 때는 20일간 4000명이 보러왔고 요즘 같은 휴가철이면 하루 300명씩 찾는다. 온갖 허드렛일에 회계와 사무를 도맡은 아내 조해정 부관장(57)과 아무 대가 바라지 않고 몸으로 뛰어 일군 성과다. 조 씨는 말한다. “물불 안 가리고 일하는 모습이 안쓰럽죠. 전시 기획에 고민하고, 무료 공연을 준비하곤 종일 전화통에 매달려 보러오라고 애걸복걸하고.”

○ 너무 소중한 관객들

“나로도를 찾는 단체관광객들이 지나다가 들르고 문턱 높다고 오지 않던 지역민들의 발걸음도 차츰 늘고 있어요. 난 그림 볼 줄 몰러, 말하던 할머니가 지팡이 짚고 찾아와 ‘그래도 옛날 그림이 더 좋아’라고 말할 때 즐겁습니다. 광주까지 나가지 않고 좋은 전시를 보게 해줘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땐 만족스럽고요. 한 명 한 명 너무 소중한 분들이죠.”

주변에선 아무 수익도 없는데 왜 이런 일을 하는가라고 궁금해한다. “한참 설명이 필요한 일이라 답변 안 합니다. 미술관은 공공성 있는 공간이자 그 자체가 교육기관입니다. 교육에 헌신한 아버지의 유업을 받들어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일이라 괴롭지 않고 재미있어요.”

마당에서 대화를 나눌 때도 풀 매느라 손을 쉬지 않고, 언제 관객이 찾아올지 몰라 밥도 후다닥 먹어치우는 미술관장. 그가 말한다. “돈 버는 일이면 이렇게 못했을 거다. 지역 사람들에게 보기 힘든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내겐 큰 행복이다.” www.nampoart.co.kr
▼ “전시 필요한 곳, 시골이면 어때요” ▼
남포미술관서 기획전 연 정상급 조각가 모임 ‘마늘회’


“이 사진은 절대 쓰면 안 돼요!” 국내 정상급 조각가 7명이 웃으며 자세를 취했다. 왼쪽부터 박승모 박선기 이길래 최태훈 정광식 이재효 성동훈 씨.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위), 아래 왼쪽부터 팔영산 줄기에 자리잡은 남포미술관,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 운동장 한쪽에 자리한 연꽃정원.
“이 사진은 절대 쓰면 안 돼요!” 국내 정상급 조각가 7명이 웃으며 자세를 취했다. 왼쪽부터 박승모 박선기 이길래 최태훈 정광식 이재효 성동훈 씨.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위), 아래 왼쪽부터 팔영산 줄기에 자리잡은 남포미술관,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 운동장 한쪽에 자리한 연꽃정원.
남해안 바닷가에 위치한 작은 미술관에 내로라하는 조각가 7명이 한데 모였다. 박선기 박승모 성동훈 이길래 이재효 정광식 최태훈 씨. 바쁜 일정 탓에 서울에서도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40대 중견 작가들이 화려한 전시공간이 아니라 폐교를 개조한 시골 미술관의 전시에 기꺼이 힘을 보탠 것.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3일∼10월 2일 전남 고흥 남포미술관에서 열리는 ‘움직이는 예술마을’전.

서울에서 휴가차 내려왔다가 3일 희경, 희지 두 딸과 전시장을 찾은 신경석 씨(41)는 “별 기대 없이 왔는데 대단한 전시를 보게 됐다”며 즐거워했다. 이 기획전의 실마리는 지난해 열린 이재효 씨의 개인전에서 만들어졌다. 그의 작품에 반한 곽형수 관장이 작업실로 무작정 찾아가 설득한 끝에 유명 작가의 개인전을 성사시켰다. 이때의 인연이 이 씨가 회장을 맡은 자칭 ‘마늘회’의 단체전으로 이어진 것. 이는 1990년대 초반 시작된 느슨한 형태의 모임으로 따로 또 같이 활동하면서 서로의 조형세계에 대한 비판과 격려를 견지하고 있다.

이재효 씨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탄탄하게 운영되는 유럽의 미술관을 보면서 참 부러웠다”며 “알찬 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관장님의 열정에 마음이 끌렸다”고 말했다. 전시를 위해 대형 작업을 가져온 최태훈 씨는 “우리는 신인 때부터 서로의 역사를 잘 아는 사이”라며 “해마다 한 번씩 지방을 찾아가 우리들의 작품을 보여주자고 목표를 정했다”고 소개했다.

참여작가들은 하나둘씩 관객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문화에 목말라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입을 모은다. 정광식 씨는 “미술관이 유명하지 않기에 전시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며 “필요한 곳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작가들의 의무이자 소명”이라고 말했다.

곽 관장은 작가들을 맞이하면서 내내 싱글벙글이다. “누가 이런 시골에서 전시를 하겠는가. 우리 부부는 흥분해서 어제 잠도 못 잤다. 작품만 보낸 게 아니라 일급 작가들이 3박 4일 동안 머물며 문화 소외 지역 아이들을 위해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준 것에 인간적 정과 존경심을 느낀다.”

고흥=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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