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 잔]‘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 쓴 심경호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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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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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록-열하일기 등 기행문 삶의 궤적과 함께 풀어 냈죠”

“선인들의 기행문에는 오늘날의 여행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뚜렷한 목적의식과 자아성찰이 있습니다. 또 여행이 공적인 것이든 표류와 같은 우연이든 그것을 자신의 내면을 변혁시킬 큰 계기로 삼았습니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56·사진)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최부의 ‘표해록(漂海錄)’,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정약용의 ‘천우기행(穿牛紀行)’ 등 25편의 옛 여행기를 꼼꼼히 해설한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고려대출판부)을 최근 펴냈다.

방랑과 같은 여행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던 심 교수는 20여 년 전 다산 정약용의 여행을 만나게 됐다. 다산이 유배에서 풀려나 60세 무렵에 춘천을 두 번이나 여행한 사실을 알고는 그가 거쳐 갔을 곳을 지도에서 확인하면서 선인들의 여행 기록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06년부터는 아예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이라는 과목을 고려대에 개설했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것에 몸을 맡기는 행위입니다. 낯선 풍경과 기이한 풍속은 여행자의 자아를 변모시키고 그 과정에서 여행자는 자신의 잠재된 모습을 발현하고 또 발견하게 되는 것이 여행의 의미지요.”

옛 사람들의 여행기는 이런 여행의 의미 외에 목적의식도 뚜렷했다는 것이 심 교수의 분석이다.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려는 듯, 특히 외국의 문물에 대해서는 더욱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와 대비시키는 사유를 빠뜨리지 않았다. 심 교수는 “최부는 명나라 때 강남에 표착해 그곳이 상업적으로 너무나 번성한 것을 보고는 ‘명나라가 유학의 국가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조선의 유학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한 것을 표해록에 적어 놓았다”고 소개했다.

신유한은 ‘해유록(海遊錄)’을 통해 일본에 대한 정확한 관찰을 마치 보고서를 쓰듯 자세하게 담아냈다. 일본의 여러 곳을 돌아본 뒤 일본은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교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속으로 얕잡아보던 조선의 관행을 경계한 것이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티베트의 고승이 열하로 초빙돼 온 것을 계기 삼아 티베트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했다. 심 교수는 “박지원의 가슴에는 열하를 넘어선 세계에 대한 상상과 동경이 가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선인들의 여행기 원문을 인용하면서 그들의 삶의 궤적과 함께 풀어냈다. 또 그들의 행로를 대부분 지도로 보여주고 있어 보기에 편하다. 그러나 말랑말랑한 에세이 형식이 아니라 학술논문 같은 글이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을 필요가 있다. 중국과 일본의 유명한 옛 여행기도 몇 편 함께 실었다.

심 교수는 선인들의 여행기를 읽고 느낀 점에 대해 “여행지에서 수많은 사진을 찍지만 나중에는 사진을 어디에 보관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여행에서 얻는 지식과 영감은 사라지곤 한다”며 “선인들이 그랬듯이 여행을 마친 뒤에는 그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을 별도로 가져야 여행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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