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종말이 와도 뻐꾸기는 운다

  • Array
  • 입력 2011년 6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십자가 있는 올리브 나무, 조마리아
십자가 있는 올리브 나무, 조마리아
대여섯 명의 중년남자들이 모여 앉은 술자리에서 휴거 얘기가 나왔습니다. 미국의 한 라디오방송 설립자가 예언한 날짜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좌중의 대부분이 언성을 높이며 성토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한 사람의 그릇된 예언을 믿고 직장을 버린 사람, 가산을 탕진한 사람, 이혼한 부부, 자살에 이른 청소년까지 숱한 피해 사례가 열거되는 동안 좌중의 분위기는 점점 더 격앙되어 갔습니다.

그때 좌중의 한 사람이 종말에 대한 얘기를 꺼냈습니다. 휴거 예언은 성경에 대한 오독이지만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지진, 해일, 화산폭발, 구제역으로 인한 가축들의 집단 폐사,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지구의 사막화 현상, 생태계 파괴 등을 예로 들며 그는 전반적으로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어긋난 휴거 예언으로 격앙되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저마다 이런저런 종말론을 입에 올리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일본의 대지진과 해일, 그리고 2012년의 종말론이 자주 거론되면서 좌중의 분위기는 점점 더 침울하게 가라앉아 갔습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있을 때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뻐꾹, 뻐꾹,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울려 퍼지는 낭랑한 새소리에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과묵하게 앉아 있던 좌중의 한 사람이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의 상의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고 그는 전화를 받고 짧게 끊었습니다. 그러고는 어색해진 좌중을 둘러보며 잔을 들어 건배를 제안했습니다. “봐라, 종말이 온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뻐꾸기는 운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일은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야. 자, 건배!”

휴거나 종말에 대한 예언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인한 치명적인 사례도 숱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스위스와 프랑스에서 일어난 ‘태양사원’ 신도 집단자살 사건, 일본에서 일어난 옴진리교 사린가스 살포 사건 등이 모두 그와 연관된 끔찍한 사례들입니다. 종말론이 사회적으로 만연하면 사회 구성원이 자기 삶의 정신적 발판을 상실하고 방황하게 됩니다. 종말을 전제로 하면 성실한 삶, 목표를 가진 삶이 모두 부질없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언제나 스피노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말의 의미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종말은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의 언어가 아닙니다. 설령 종말이 온다고 해도 그것을 이성적으로 다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인간은 날마다 종말을 살기 때문에 종말에 대해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스피노자가 일깨우고 싶어 한 지혜의 핵심처럼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면 됩니다. 날마다 종말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자세, 그것이 열정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입니다. 날마다 종말을 고하고, 날마다 개벽하는 삶, 그것을 통해 우리는 날마다 다시 태어나는 존재가 됩니다.

박상우 작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