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잔]산문집 ‘백화점 그리고 사물·세계·사람’ 펴낸 소설가 조경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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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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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욕망, 행복을 즐기려 백화점으로 피크닉 갔어요”

“백화점은 이 도시에서 저에게 즐거움을 주는 공간입니다. 거기 있는 사물에 대한 얘기를 써보고 싶었죠.”

중견 소설가 조경란 씨(42·사진)는 산문집 ‘백화점 그리고 사물·세계·사람’(톨)을 낸 까닭을 이렇게 밝혔다. 개인적 경험과 단상을 적은 통상의 산문집이라고 보기에는 책이 ‘묵직’하다. 백화점에 얽힌 경험뿐만 아니라 백화점들을 돌며 발품을 팔았고, 일본에 3주 동안 체류하며 현지 백화점도 살펴봤기 때문. 백화점의 역사뿐만 아니라 심리학, 마케팅과 관련된 정보도 눈에 띈다. ‘조경란의 악어이야기’ 이후 8년 만에 낸 산문집을 그는 “피크닉을 가듯이 즐겁게 썼다”며 웃었다.

“장편 ‘복어’(2010년)를 끝내고 여유가 좀 생겼죠. 좋은 소설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한번 본격적인 산문을 써보자는 욕심이 들었죠.”

하필 백화점일까. 자연보다는 도서관, 백화점 등 인공적인 구조물에서 안정감을 느낀다는 게 그의 설명. 도서관을 나와 백화점으로 향하는 코스도 평소 즐긴다. 하지만 명품관보다는 상품을 싸게 파는 특별 매장에 더 익숙하다고.

책을 펼치면 조 씨와 함께 백화점에 들러 원도쇼핑을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1층 화장품·향수 매장에서 시작해 2층 여성복, 3층 구두와 가방 매장 등을 거쳐 10층 식당가와 옥상정원에 이른다. 그러고는 내려와 지하1층 슈퍼마켓을 지나 지하철 연결 통로로 나오는 짧고도 긴 여정이다.

1층 향수 코너에 들어선 조 씨는 예전에 썼던 머스크(사향 냄새) 향수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고, 향수의 기원이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제의(祭儀)에서 나왔다는 야야기, 향수계의 히트작인 샤넬 넘버파이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의 것 하나만은 타인과 구별하고 싶은 무의식적 욕망’으로 향수 쓰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추측해 보기도 한다.

구두 수백 켤레가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며 진열돼 있는 백화점 구두 매장. 조경란 씨는 “너무 많은 것 속에선 언제나처럼 갈등이 생긴다”고 말한다. 톨 제공
구두 수백 켤레가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며 진열돼 있는 백화점 구두 매장. 조경란 씨는 “너무 많은 것 속에선 언제나처럼 갈등이 생긴다”고 말한다. 톨 제공
4층 ‘가발 매장 방문기’는 너무 솔직하다. 어느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많이 늙었네요. 머리도 많이 빠지고”라는 말을 들은 조 씨는 가발 매장에서 부분 가발을 쓴 자신의 모습을 보고 ‘탐스럽다’고 느낀다. 그러곤 말한다. “언젠가 헤어스타일이 쇼트커트로 바뀌었다면 가발인지 묻지 말아 달라”고.

조 씨는 백화점의 도움을 받아 폐점 후 매장 모습부터 물품보관소, 구두수선실, 집배실, 의무실, 직원전용식당 등을 살폈다.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을 곳으로 의류수선실을 꼽았다. ‘수선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색색의 둥근 실패들. 눈을 찌르듯 빛나던 그 다채로운 색깔들은 백화점 안의 어떤 사물들보다 옹골차고 쓸모 있어 보였다.’

“백화점은 알면 알수록 굉장히 큰 주제였어요. 도시, 근대, 역사, 욕망, 소비, 개인의 취향 등이 모두 얽혀있는 듯했죠.”

의외의 얘기도 꺼냈다. 백화점 얘기를 쓰기에 자신이 부적격자라는 걱정도 든다는 것. “명품을 구매해 본 적이 없어 명품이 주는 순수한 기쁨의 의미를 전할 수 없었어요. 또 운전을 못해서 지하주차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쓰지 못한 점도 아쉬웠습니다.”

조 씨는 374쪽의 이 두툼한 산문집에 못 담은 얘기가 많다고 했다. 언젠가는 백화점을 주제로 한 단편 소설을 쓰고 싶으며, 몇 년 뒤에는 다른 주제의 인문서를 하나 써볼까 생각하고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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