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폭압적인 가부장 나르시시즘 앞에 가족들의 희생은 어찌해야 끝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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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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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더 위너’
연출★★★☆ 대본★★★ 연기★★★ 무대★★★

연극 ‘더 위너’에 등
장하는 근석(한동규·
왼쪽)은 가장이면서
도 가족보다 자신을
먼저 챙기는 자기애
의 화신이다. 아내
경옥(박지아)은 이런
근석에게 순종할 뿐
대항하지 않는다.
혜화동1번지 제공
연극 ‘더 위너’에 등 장하는 근석(한동규· 왼쪽)은 가장이면서 도 가족보다 자신을 먼저 챙기는 자기애 의 화신이다. 아내 경옥(박지아)은 이런 근석에게 순종할 뿐 대항하지 않는다. 혜화동1번지 제공
새로 출범한 ‘혜화동1번지’ 5기 동인이 멤버 5명의 작품을 잇달아 올리는 봄 페스티벌 ‘나는 나르시시스트다’로 활동을 시작했다. 첫 번째 작품 ‘더 위너’(김수희 작·연출)는 한국 사회에서 있을 법한 한 폭군 가장과 가족의 얘기를 섬뜩한 결말로 매듭지으면서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강한 것”이라는 대중적 통념을 뒤흔든다.

극은 강도의 칼에 찔려 죽었지만 여전히 자신이 살던 세계를 떠도는 진수(김영록)의 영혼이 무대에 등장해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진수의 가족은 화목한 가정과는 거리가 멀다. 그 원흉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근석(한동규)이다. 그는 빚 때문에 집 전체가 경매에 넘어가는 와중에도 가족을 팽개치고 아내 경옥(박지아)의 패물까지 빼앗아 내연녀와 함께 내빼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다. 게다가 아내와 아들이 고생 끝에 겨우 보금자리를 마련하자 다시 돌아와 집을 접수한다. 그것도 모자라 아들의 장례가 끝난 뒤 조의금 봉투에 더 신경을 쓰고 아들의 여자로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는 수현(장정애)을 은밀히 탐한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은 내내 불편하다. 권선징악 구도의 전형적 할리우드 영화라면 그동안 당하기만 했던 모자에게 행복을 되찾아주고 근석에게 벌을 내려 이 심리적 불편함을 해소시키겠지만 연극은 정반대로 치닫는다. 모자는 자신들에게 닥친 현실에 무기력으로 일관하다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 반면 마지막 장면에서 근석은 끝까지 살아남아 수현의 간병을 받으며 “난 살아있어, 살아갈 거야. 너와 함께”라고 말한다. 이 대사가 섬뜩한 것은 자신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진수에게 “고민해 봤자 결국 나랑 함께하게 될 거야”라고 말한 수현의 대사와 고스란히 겹치기 때문이다.

제목 ‘더 위너’가 단순히 끝까지 살아남은 근석의 승리를 표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를 통해 한국 특유의 끈끈한 가족문화에서 가부장의 권위로 포장된 자기애(나르시시즘)가 어떻게 독버섯처럼 번성할 수 있는지를 고발한 것으로 봐야 한다.

아쉬운 점은 근석으로 대표되는 나르시시즘이 얼마나 황폐한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주는 데 치중한 나머지 수현의 자기긍정 에너지까지 주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나르시시즘의 일환으로 그려낸 점이다. 아들의 죽음 이후 남편의 변화가 자신의 희생에 대한 화답이 아니라 수현에 의해 촉발된 것임을 자기희생적인 경옥이 견디지 못해 결국 남편과 동반자살을 꾀한다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이기적인 자기애와 이타적인 자기긍정의 경계에 대한 더욱 깊은 성찰을 기대해 본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i:1만5000∼2만 원. 5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02-764-7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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