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詩, 긴 여운… 極서정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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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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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 소통하자” 시집 펴낸 조정권-이하석-최동호 시인

‘극서정시’란 새 개념을 바탕으로 시집을 낸 중견 시인들. 왼쪽부터 최동호, 이하석, 조정권 시인.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극서정시’란 새 개념을 바탕으로 시집을 낸 중견 시인들. 왼쪽부터 최동호, 이하석, 조정권 시인.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조정권(62) 이하석(63) 최동호 시인(63) 등 예순이 넘은 시인들이 새 시집을 내며 시단에 새로운 담론을 던졌다. 이른바 ‘극(極)서정시 운동’이다.

세 시인은 15일 간담회를 열고 “오늘날 시의 위기는 독자들과의 소통 부재에서 왔다. 난해하고 기괴한 시보다는 짧고 함축적이며 서정적인 시로 독자들과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조 시인은 ‘먹으로 흰 꽃을 그리다’, 이 시인은 ‘상응’, 최 시인은 ‘얼음 얼굴’(이상 서정시학)을 나란히 선보였다. 세 시인 모두 반년 전부터 출간 준비를 해왔다.

문학평론가 유성호 씨는 “의미론적 하중(荷重)에 지쳐 있는 한국 시단에서 중견 시인들이 언어의 율동, 감각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흔치 않은 기회다. 몇 년 전 젊은 시인들이 환상과 실험적 성격의 시를 보여줬던 것의 대척점에 위치한 서정시의 한 운동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시집들을 묶는 개념인 ‘극서정시’란 무엇일까. 서정시학 주간을 맡고 있는 최 시인은 “짧고 간결한 시로 소통 가능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써보자는 얘기다. 예술사적으로 보면 시의 미니멀리즘이며 궁극적인 지향점은 ‘아주 명징한 시’다”라고 말했다. 조 시인은 “개념이 아직 명확하게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내 입장에서는 ‘언어의 경제학’을 지향하는 서정시 형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 사람의 극서정시는 대개 짧고 압축적이기 때문에 독자에게 긴 여운과 명상의 몫을 남겨둔다. ‘매화 날리는 강가 달매화 뜬다 파 한 단 달 따라간다’(조정권 ‘달매화’ 전문). ‘활짝 핀 나팔꽃/콧구멍//발굽 밑 뽀얗게 굶주린/대지//자욱한 구름 위로 날 선/말갈기//흙먼지 하얗게 들끓는/땀방울’(최동호 ‘경마장’ 전문).

시집 모두가 한두 행이 전부인 시들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다. 이 시인의 ‘구름의 들’ ‘나무에 대하여’ 등은 다음 장까지 넘어갈 정도로 길다. 조 시인은 “반드시 짧게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동안 시 언어들이 너무 과소비로 치달아 왔고 언어를 혹사, 학대하고 거칠게 다뤄온 것을 반성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서정시학은 1호부터 시작한 기존 시선 외에 101호부터 시작하는 ‘극서정시 시리즈’를 꾸준히 출간할 계획이다. 시집은 작고 얇아졌다. 이번 시집은 가로 12.7cm, 세로 19.5cm로 기존 시집보다 각각 1∼2cm가량 작다. 보통 시집에 시 50∼60편이 들어가지만 이번 시집들은 30∼40편을 담았다. 이 시인은 “최근 시집이 두꺼운 데다 시도 길어서 독자들에게 부담이 많이 됐다. 읽는 부담을 줄여주는 그런 시집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길 원로시인과 오세영 유안진 시인도 4월 말쯤 함께 극서정시 시집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최 시인은 “기존 대형 출판사들의 시집들과는 색깔이 다른 시선을 낼 예정이다. 취지에 공감하는 젊은 작가들에게도 문을 개방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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