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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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5일 14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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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1000원짜리 쫙쫙 늘어나는 요술버선을 사서 마을회관 계신 노인 분들한테 드렸어요. 그랬더니 할머니 한 분이 허리가 아파서 그걸 발에 신지는 못하시고 양 손에 딱 끼시더니, 우리 가는 마당까지 따라 나와서 춤을 추시는 거에요. 그 추운 마당에서! 그게 우리 어머니들이에요. 그런 에너지가 있는 분들요."

할머니들에 의한, 할머니들을 위한, 할머니들의 공연이 온다. 18~20일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무대에 오르는 안은미 무용단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작품의 시작은 '춤추는 할머니 1000' 프로젝트였다. 2010년 10월, 안무가 안은미 씨와 안은미 무용단 무용수 네 명이 자전거를 타고 길을 떠났다.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전국 방방곡곡을 돌고 돌아 3주 동안 할머니 수백 명을 만났고 '춤추는 할머니' 220명을 카메라에 담았다.

"자전거 타고 가다가 할머니 발견하면 그대로 차 세우고 설득 작전 시작하는 거에요. '할머니 예쁜 모습을 미래의 우리 아기들한테 보여줘야 한다. 춤 한 번만 춰달라'고요."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연습실에서 만난 안 씨는 "할머니 한 분 한 분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할머니 그 자체가 (프로젝트의) 목적이었어요. 할머니들의 몸에 녹아 있는 그 독특한 리듬감, 동작, 그 모든 걸 담는 거죠. 그 안에 일생을 살아온 힘, 그 역사가 숨어 있거든요. 할머니들 패션도 정말 재미있어요. 눈썹 그려놓으신 걸 보면 그 선 안에 동양화가 숨어 있다니까요."

마을회관이며 노인정을 찾아가는 것은 물론 밭에서 김매던 할머니, 바닷가에서 미역 따는 할머니를 붙잡고 30분이 넘도록 설득하는 일도 예사였다. 하루에 서른 명 넘게 찍는 날이 있는가 하면 한 명밖에 못 찍는 날도 있었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포스터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포스터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이렇게 모은 춤을 모티브로 한다. 여행에서 찍은 동영상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경북 영주에서 만난 할머니 스물세 분과 전북 익산에서 만난 김길만, 신점순 씨 부부가 직접 출연한다. 전체 90분 공연 중 마지막 30분에 등장해 '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안 씨는 2008년 서울 정동극장 '방언' 공연을 펼쳤던 정덕미 씨(80)가 '춤추는 할머니 1호'라고 말한다. 평생 꿈이 무용수로 안 씨의 친구 어머니인 정 씨는 희수를 맞아 안 씨의 도움으로 솔로 무대를 펼쳤다. "6개월 동안 안무도 직접 짜셨어요. 감동이었죠. 역정의 인생을 산 여자의 몸에서 나오는 저 춤, 저 소리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라고 생각했어요."

그 날의 기억은 더 많은 할머니를 만나도록 안 씨를 이끌었다. 그는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며 놀랐다고 말한다. "요즘 60대는 예전 30대 같고, 요즘 90대는 예전 60대 같다"고도 했다. 고령화 사회를 직접 체험한 셈이다.

"노인은 불쌍하다, 돌봐줘야 한다는 시각으로는 이제 안 된다는 거죠. 옆에서 조금만 잘한다 해드리면 '허리 아프다'고 하다가도 벌떡 일어나 춤추시는 분들이에요. 스스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재능을 펴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해요."

그 같은 발견은 할머니를 온전히 주체로 내세운 이번 공연을 결심한 또 다른 이유이자 "노인 분들이 가족과 함께 공연을 보러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멀지 않은 이웃의 이야기를 보며 '나도 저렇게 예쁜 모습으로, 저런 인생을 살 수 있구나'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시작일 뿐이다. "지금까지 찍은 영상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도 있고 전시회를 할 수도 있어요.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더 많은 할머니 동영상을 올리고, 그런 분들 중에 또 모아서 할머니 무용단을 만들 수도 있고요."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할머니 될 때까지 이 일만은 계속 하겠다"고 안 씨는 말했다. "예술가보다 훨씬 치열하게, 먹고 사는 문제와 싸우며 고독과 적막을 이겨온 분들이에요. 얼마나 대단한 어머니들이에요? 전쟁이나 분단 같은 수많은 사건을 겪은 몸이에요. 우리 시대의 몸과는 다르죠. 어디서 이렇게 많은 20세기의 몸들을 만나겠어요? 우리가 아직 몰랐던 '블루오션'이라니까요."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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