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의 향기]자연 벗하고 가족과 소통한 옛문인들 풍류 통해 인생에 대한 사랑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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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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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즐기는 삶
강혜선 지음 411쪽·1만6000원·태학사

“…나는 늙고 특별한 일이 없어서 항상 책을 읽다가 지치면 시를 읊어 마음을 풀고, 간혹 지팡이를 끌며 거닐기도 하였다. 때마침 비가 새로 개어서 숲 그림자가 시원할 때, 매년 눈과 서리가 섞여 내리고 온갖 나무들이 시들어 마를 때, 오직 내 정원만은 몹시 푸르러 사랑스러웠다.”

조선 중기 문인 허목이 69세에 지은 ‘십청원기(十靑園記)’의 서두다. 늘그막에 나간 벼슬길을 접고 전원으로 돌아온 그의 마음에는 한 점 흔들림이 없었다. 벼슬에 나가기 전 오랜 세월을 처사로 전원에서 살았으니, 다시 돌아온 전원의 삶이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이 글의 핵심은 글 제목처럼 ‘10가지 푸른 것’에 있다. 꽃이란 언제나 피었다가 시들고 마는 법, 인생도 꽃처럼 영고성쇠(榮枯盛衰)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꼿꼿이 돌을 쌓아 석가산을 만들고 곳곳에 사철 푸른 나무를 심었다. 늘 푸르게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수목뿐이랴. 그는 사람의 의지와 정신도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성신여대 국문과 교수인 저자가 좋아하는 옛 문인들의 글을 모았다. 허목처럼 자아를 성찰하고, 사는 집을 노래하고, 가족 또는 벗과 소통하고, 개인적인 취향을 이야기하는 글들을 이 책에 소개한다. 저자는 “이 글들을 통해 옛 문인들의 삶을, 생활을 그려 보면서, 나 역시 인생에 대한 사랑을 조금씩 배워갔다”고 말한다.

실학자 담헌 홍대용은 과학기기 제작서인 ‘농수각의기지(籠水閣儀器誌)’를 펴내고 서양식 자명종의 원리로 시계를 만들기도 했다. 자연과학에 능했던 그는 스스로 “평소 시문을 즐기지도 잘 짓지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살던 집을 노래한 글을 보면 그가 풍류를 아는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실학자 박지원의 ‘하야연기(夏夜연記)’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때 비가 쏟아지려고 해 동쪽 하늘가의 구름이 먹빛 같아서 그저 우레 한 번이면 용이 비를 퍼부을 참이었다. 잠시 뒤 우르르 하고 긴 우렛소리가 하늘로 지나가자 담헌이 악사에게 ‘저 소리는 어느 소리에 해당할까?’ 하니, 드디어 거문고를 당겨 그 소리에 곡조를 맞추었다.”

자연의 소리를 거문고로 연주하면 인간의 성정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이처럼 홍대용은 우렛소리를 거문고 연주로 표현하는 풍류의 경지에 이르렀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거문고를 “성인이 악기로 성정을 수양하여 천진으로 돌아가게 하는 악기”라고 했다.

20년 가까운 유배세월 동안 세 살배기 넷째 아들이 아버지가 보내준 소라껍데기를 손에 쥔 채 아버지를 기다리다 죽었고, 시집와 1년도 채 함께 지내지 못한 둘째 며느리가 먼저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 이야기다. 그가 보낸 편지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염려가 누구보다 절절하다.

“…너희들이 만일 독서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는 나의 저서가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열흘도 못되어 병이 날 것이요, 병이 나면 고칠 수 있는 약도 없을 것이다.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이 나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 아니겠느냐?”

유배된 다음 해인 1802년 전남 강진군에서 부친 편지에서 그는 목숨을 걸고 아들에게 독서를 권한다. 그는 과거를 볼 수 없는 폐족(廢族)의 처지가 된 두 아들을 “인간의 제일가는 깨끗한 일인 독서만이 좌절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며, 오히려 지금이 진정한 독서를 할 기회”라며 달랜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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