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사진+입체… 날카로운 직선, 부드러운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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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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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왕 개인전
12월 3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SP 02-546-3560

조병왕의 ‘Cross-Dimensional Drawing 030510’. 칼날이 만들어낸 예리한 선이 깊은 검은색과 어울리면서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진 제공 갤러리SP
조병왕의 ‘Cross-Dimensional Drawing 030510’. 칼날이 만들어낸 예리한 선이 깊은 검은색과 어울리면서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진 제공 갤러리SP
무수히 칼을 긋는다. 칼질의 흔적마다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예리한 선(線)들. 그것은 상처이기도 하고 새로운 길이기도 하다.

조병왕의 작품은 선(線)과 드로잉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자 발견이다. 그의 작업은 사진의 표면을 예리하게 긁어내 선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회화 사진 입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독특한 작업이기도 하다. 작가는 캔버스에 형광안료로 그림을 그린 후 이를 카메라로 촬영해 초광택 특수플라스틱 인화지에 인화한다. 그 후 칼과 자를 이용해 표면을 mm 단위로 긁어 수천 개의 수평선을 만들어낸다.

그 작업과정은 일종의 드로잉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평면회화에서 사진으로 다시 입체(긁어냄으로써 입체 공간이 생긴다)로 이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넘어간다고 해서 작가는 이를 Cross-Dimensional 드로잉이라고 부른다. 작품 제목도 이를 따랐다.

작가는 10년째 이 작업을 고집해 오고 있다. 작가가 긁어내는 것은 감광유제. 칼이 지나가면 거기 흰 선이 남는다. 언뜻 보면 추상화 같다. 미세한 칼질이 만들어낸 수천 개의 정밀한 선. 그것은 미세한 여백이 된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보면 새로운 존재감이 물이 번지듯 밀려들어온다. 비어 있음의 충만 같은 것. 이것들은 서로 얽히면서 색다른 분위기와 사유를 이끌어낸다.

가로로 끝없이 이어지는 수많은 선. 날카로운 직선이 화면을 긴장시킨다. 칼로 그어 만든 것이라고 하니 더욱 날카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가늘고 예리한 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의 폭을 좀 더 넓게 잡고 감광유제를 살짝 남기기도 한다. 칼로 긁어냈으되 유제의 흔적이 좀 더 많이 남는 선도 있다. 깔끔하게 만들어진 선에 비해 무언가 삶의 흔적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기하학적 선은 바다의 수평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3층 전시실에 걸린 금빛 ‘Cross-Dimensional Drawing’ 작품은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킬 정도다. 검은색과 은근한 금빛의 대비도 인상적이다. 먼 바다 앞에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늦가을에 만나는 이색적인 사유의 기회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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