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깨사-클래식계 ‘이단아’ 콰르텟 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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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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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곡 멋대로 작명… 무대선 퍼포먼스

《말총머리를 한 건장한 사내가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현악사중주단 ‘콰르텟 엑스’의 리더 조윤범 씨(35). “오늘 들려 드릴 곡은 비발디의 ‘사계’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곡은 너무 깁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연주하고 싶지만 그러면 여러분 오늘 집에 못 가셔요. 그래서 여름과 겨울만 연주합니다.” 익살스러운 소개말에 관중은 킥킥댔다. 콰르텟 엑스가 9월 ‘문화와 예술이 있는 서울광장’ 무대에서 선보인 공연 모습이다. 2000년 결성한 콰르텟 엑스의 지난 10년은 클래식을 대중에게 쉽게 전하기 위한 파격적 실험의 연속으로 압축된다.》
파격적인 포스터와 해설지, 고전명곡에 새 이름붙이기, IT기기활용 등으로 실내악 고정팬 넓히기에 힘을 쏟고 있는 현악4중주단 ‘콰르텟 엑스’. -좌측부터 임이랑 씨 김희준 씨 박소연 씨 조윤범 씨 이상-원대연 기자yeon72@donga.com
파격적인 포스터와 해설지, 고전명곡에 새 이름붙이기, IT기기활용 등으로 실내악 고정팬 넓히기에 힘을 쏟고 있는 현악4중주단 ‘콰르텟 엑스’. -좌측부터 임이랑 씨 김희준 씨 박소연 씨 조윤범 씨 이상-원대연 기자yeon72@donga.com
○ 현악사중주의 시장을 개척하다

콰르텟 엑스는 2000년 4월에 결성됐지만 첫 공연은 2002년 9월에 무대에 오른 ‘거친바람 성난파도’였다. 연습 기간만 2년 5개월이 걸린 것.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오래 활동하는 실내악단이 거의 없었어요. 클래식 전공자들이 졸업하면서 단체를 만들어도 몇 번 연주회하고 나면 대개 악단이 해체돼 버리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어차피 해체할 거면 연습이나 많이 해보자’라고 생각했죠.”

첫 공연에서 대작인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첫 곡으로 내세웠고 길고 난해하기로 이름난 베토벤의 ‘대푸가’ 4중주를 외워서 연주했다. 뮤지컬을 보는 듯한 짜인 표정과 몸짓은 특히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잔잔했던 클래식의 수면에 이렇게 돌멩이를 던진 콰르텟 엑스는 현재 전국을 돌며 연 250여 회나 연주한다. 재치있고 명쾌한 입담의 조 씨는 연 150여 회 클래식 강의에 나선다. 조 씨의 해설과 콰르텟 엑스의 연주를 곁들여 예술공연 전문 케이블TV에서 방영된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프로그램도 ‘쉬우면서도 몰랐던 데 눈을 뜨게 해주는’ 프로그램으로 클래식 초보자와 마니아층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조 씨를 제외한 원년 멤버들은 바뀌었지만 한결같은 정체성을 유지하며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조 씨가 제1바이올린 겸 리더이며 박소연(28·제2바이올린), 김희준(33·비올라), 임이랑 씨(30·첼로)가 멤버로 뛰고 있다.

1월 합류한 임 씨는 “오케스트라에서 있었고 재즈공연에도 섰지만 여기(콰르텟 엑스)가 가장 힘들다. 너무 바빠서 죽을 지경”이라며 웃었다. 고정 팬도 매년 늘고 있다. 김 씨는 “싸이월드의 팬카페 회원은 4500여 명인데 여름마다 수련모임(MT)도 같이 간다”고 말했다.

○ 클래식 공연의 틀을 깨다


콰르텟 엑스의 공연포스터는 홍익대 앞 인디밴드의 포스터보다도 재기발랄하다. 지난해 베토벤 현악사중주의 전곡 연주회를 알리는 공연은 제목을 ‘베토벤 백신’으로 달고 약병 속에 바이올린을 집어넣은 그림을 넣었다. 2007년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현악사중주 포스터에는 관객이 메뉴판(공연팸플릿)을 보고 고민하는 옆에 하이든이 웨이터로 등장해 “하이든은 어떤 것으로 드셔도 최상급입니다”라고 말한다. 지난달 시작해 내달 5월까지 매달 한 번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올림푸스홀에서 공연하는 슈만, 브람스, 차이콥스키의 실내악 전곡 연주회는 제목을 ‘콰르텟 엑스와 세 개의 방’으로 달았다.

“영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따왔는데 재밌죠? 아이디어는 신문 잡지 영화 뮤지컬 등에서 얻어요. 관객이 재미있어 하니까 좋죠.”(조 씨)

전곡도 연주하지만 일부 악장을 뽑은 ‘하이라이트 연주’도 단골메뉴다. 고전 명곡에 멋대로 작명도 한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1번 4악장이 고양이가 털실을 갖고 논다는 느낌이 난다고 ‘고양이’라고 이름 붙이는 식이다. ‘작곡가의 본래 의도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말라’는 게 불문율인 보수적인 클래식계로 보면 ‘불경한 이단아’인 셈이다.

나아가 무대에서 이들은 배우로 변한다. 소리가 줄어들면 동작을 작게 하고, 둘이 연주할 때는 서로를 바라본다. 연주하면서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게 꾸미지만 먼저 이런 동작을 치밀하게 연습하고 영상 녹화한 뒤 점검한다. ‘짜인 각본’인 셈이다. “연주자가 감동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이 감동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만큼 무대 위 표정, 몸짓들을 철저히 연구할 수밖에 없죠.”(조 씨)

공연과 음반활동뿐 아니라 관련 서적 출간과 강의 등으로 ‘원 소스 멀티 유스’에도 전념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등에 들어갈 ‘전자팸플릿’을 정보기술(IT) 기술자들과 제작하고 있다.

현악 전문지 ‘스트라드’의 최희정 편집장은 “클래식을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전달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그룹이다. 특히 기획공연이 드물었던 2000년대 초반부터 새로운 공연을 시도한 데 의미가 크다”며 콰르텟 엑스를 평가했다.

통영국제음악제 이사인 김승근 서울대 국악과 교수는 “처음 봤을 때는 ‘뭐 이런 괴상한 그룹이 있나’라고 생각했다. 클래식을 정통으로 하시는 분 가운데는 싫어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런 그룹이 하나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볼 때 ‘조윤범’은 오버쟁이다. 조금은 찬찬히 정리하고 뒤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며 웃음을 곁들여 덧붙였다.

○ ‘파토’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10년을 달려온 콰르텟 엑스에 앞으로의 10년을 물었다. “고스톱의 ‘파토’처럼 클래식계의 판을 흔들고 싶어요. 판은 항상 바꾸고 깨야 합니다. 전통에 그냥 무임승차하면 발전할 수 없어요. 5년이든 10년이든 계속 부수고 해체해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낼 생각입니다.”(조 씨)

“작곡가들을 연구해 저희만의 색깔로 채색하고 그들의 전곡을 녹음하고 싶어요.”(박 씨)

해외에 진출할 계획은 없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준비 없이 나가면 한두 번의 공연으로 그칠 거예요. ‘해외 청중은 어떤 음악, 어떤 스타일을 좋아할 것인가’를 치밀하게 연구하고 연습한 뒤에 나갈 겁니다.”(조 씨)

데뷔 준비가 길었던 것처럼 해외 진출에도 이 악단의 ‘신중한’ 초심은 여전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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