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겨운 삶 보듬는 것은 ‘인간의 희망’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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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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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분노하기보다는/눈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점자시집을 읽으며 잠 못 드는 밤/별들이 내려와 환하게 손가락으로 시집을 읽는다/시들이 손가락에 매달려 눈물을 흘린다(시 ‘점자시집을 읽는 밤’중에서)》

■ 정호승 새 시집 ‘밥값’

정호승 시인은 올해로 회갑을 맞았다. 3년 만의 신작 ‘밥값’(창비)은 그의 열 번째 시집이다. 2일 만난 시인에게 제목이 적나라하다고 웃음 섞인 인상을 말했더니 “나이 들어서 그렇지, 뭘”이라며 시인도 웃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같은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이전 시집을 생각하면 ‘밥값’은 얼핏 소박해 보인다. 시도 짧아졌다. ‘여기/가장 높이 나는 새가 되고 싶었던/밥 먹는 시간보다/기도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새들의 노숙자 한 마리 잠들어 있다’가 시 ‘새들을 위한 묘비명’의 전문이고, ‘어머니 바느질하시다가/바늘로 허공을 찌른다/피가 난다/어머니 바늘로 허공을 기워/수의를 만드신다’가 ‘허공’의 전문이다.

새 시집 ‘밥값’에서 정호승 시인은 주변을 돌아보는 따스한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서 인간 존재 그 자체에 대해 경건하게 성찰한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새 시집 ‘밥값’에서 정호승 시인은 주변을 돌아보는 따스한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서 인간 존재 그 자체에 대해 경건하게 성찰한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복잡다단한 시대를 살다 보니 말이 많아지는 게 현실이지요. 그렇지만 시는 침묵이 머무는 곳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요. 그런 시의 본령으로 가보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짧아지고….” 그의 삶 자체가 그러했다고 시인은 돌아본다. 등단한 지 37년, 그동안 시를 한 줄도 못 썼던 시간이 15년이었다. 침묵 속에서 시가 오랫동안 일궈졌고, 침묵을 뚫고 시가 나왔다.

새 시집에는 초기 시의 ‘슬픔’을 떠올리게 하는 시편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1970, 80년대의 ‘슬픔’이 엄혹한 시대로 인한 슬픔이었던 데 비해 2000년대의 ‘슬픔’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이다. “시대라는 그늘에 눌리지 않고도 인간은 여전히 비루하고 비극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 시의 발화점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비극에서 시작된다고 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 씨는 “한편으로 인간은 믿음의 존재”라고 했다. “가령 어머니가 자식에게 주는 헌신적인 사랑을 생각해 보세요. 인간이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생각하면 희망을 갖게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깨달음을 시에 담습니다. 그래서 시는 인간을 이해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짐’은 그런 인간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된 작품이다. ‘내 짐 속에는 다른 사람의 짐이 절반이다/다른 사람의 짐을 지고 가지 않으면/결코 내 짐마저 지고 갈 수 없다/길을 떠날 때마다/다른 사람의 짐은 멀리 던져버려도/어느새 다른 사람의 짐이/내가 짊어지고 가는 짐의 절반 이상이다/풀잎이 이슬을 무거워하지 않는 것처럼/나도 내 짐이 아침이슬이길 간절히 바랐으나/이슬에도 햇살의 무게가 절반 이상이다.’

등단작 ‘첨성대’에서 노래했던 첨성대가 시집의 마지막 작품 ‘소년’에 등장한다. “내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게 소년의 마음인데 살다 보니 그 마음이 훼손됐지요. 이제 그 마음을 회복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야 내 삶이 순결하게 정리되지 않을까 합니다.” 회갑인 그의 얼굴이 소년처럼 맑다고 했더니 시인은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젓는다. 그러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가슴속에 남은 써야 할 시들을 쓰면서, 이제 정리를 시작하면서 살아가자고 생각하게 됩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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