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사라다 햄버튼’과의 동거…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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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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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다 햄버튼의 겨울/김유철 지음/192쪽·9000원/문학동네

김유철 씨의 장편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은 고양이, 카페의 아르바이트 학생, 오랜만에 재회한 계부. 주변 사람들과의 섞임을 통해 마음의 상처와 화해를 묘사한다. 일러스트 제공 문학동네
김유철 씨의 장편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은 고양이, 카페의 아르바이트 학생, 오랜만에 재회한 계부. 주변 사람들과의 섞임을 통해 마음의 상처와 화해를 묘사한다. 일러스트 제공 문학동네
문학이라면 ‘센’ 얘기를 다룰 것 같다는 편견이 있다. 문학이란 현실의 어둡고 지저분한 부분을 후벼 파야 한다고, 사랑 얘기도 독하게 해야 한다고 대개의 사람들은 여긴다.

올해의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인 김유철 씨(39·사진)의 장편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은 이런 편견에서 비켜나 있다. 이 소설은 말하자면, ‘간을 순하게 한’ 작품이다. 소설의 많은 주인공이 그렇듯 ‘사라다…’의 사내도 오랜 연인과 실연하는 데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몇날 며칠을 술과 폭식으로 지내고,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고는 좀처럼 재취업하기 어렵고, 붙잡을 만한 인연일 것 같았던 또 다른 여성과의 관계 맺기도 어긋나지만 놀랍게도 이 소설은 따뜻하다.

K의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동거하던 여자친구 S마저 집을 떠났다. 쓸쓸하고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K에게 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왔다. 이름을 ‘사라다 햄버튼’으로 지어주고 K는 고양이와의 동거를 시작한다. 고양이가 샐러드를 잘 먹는다는 것, 고양이를 만났을 때 울버 햄프턴의 축구경기를 보고 있었다는 것이 명명(命名)의 연원이다. ‘샐러드’보다는 ‘사라다’가, ‘햄프턴’보다는 ‘햄버튼’이 순전히 발음하기 쉽다는 이유이지만, 그 이름은 소설 전체를 부드럽게 비추는 조명 같은 역할을 한다.

K에게 고양이 ‘사라다 햄버튼’이, 카페 달리웨이에서 일하는 여대생 R가, 어머니와 이혼하고 캐나다로 떠났던 계부가 나타난다. 소설은 혼자 외롭게 남겨진 줄 알았던 K가 이들로 인해서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안게 되는 한 계절을 보여준다. K의 삶을 파고드는 새로운 대상들은 그러나 의식적으로 K를 위로하지 않는다. 그들이 살아내는 저마다의 인생이 K와 얽혀드는 과정에서 K는 차마 정리하지 못했던 지나간 사랑의 한 장(章)을 덮게 된다.

김유철
‘사라다 햄버튼’의 전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고양이 탐정이 나선다. R는 자신에게 무심한 K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한편으로 독신인 일본인 교수의 구애를 받고서는 고민하고 있다. 헤어진 아내에 대한 애잔한 사랑을 간직한 계부는 K가 지금껏 존재를 알지 못했던 친부를 만나도록 다리를 놓아준다. 억지로 착한 척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제 나름의 상처를 갖고도 세상을 온순하게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 아르바이트 하던 회사의 대표가 친부였다는 설정, ‘사라다 햄버튼’의 전 주인과 옛 여자친구 S와의 미묘한 관계에 대한 암시 같은 것들은 작위적으로 비치기도 하지만 이 소설의 착한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을 맡는다.

“힘들지만 아름답고 뭉클한 장면,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 김유철 씨. 그러면서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미화시키는 것 같아 좋은 현상은 아닌 듯싶다”며 고민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명시하는 부분은 “우리가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온전히 사라지고 난 뒤에 가능하다는”(소설가 이기호) 것이다. 이는 마냥 따뜻하지 않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으로써 성숙하게 되는 인생의 메시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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